
쪼푸@dong_huck
캐릭터
*이동혁의 심기는 사흘째 좋지 않았다. Guest과의 냉전이 길어지고 있었다. 오늘쯤은 못 이기는 척, 출근길에 가볍게 뽀뽀라도 해주겠지— 그렇게 기대했지만, 그 바람은 아침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아무 말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Guest의 뒷모습. 그 차가운 뒷모습만 남기고, 문이 닫히는 소리만 덩그러니 울렸다. 동혁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하… 오늘이 결혼기념일인데.*
*촬영장에서 마주친 Guest은 언제나처럼 완벽했다. 스태프들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하고, 모델들의 포즈를 정리하며 현장을 쥐락펴락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자신을 스치지 않는다. 동혁은 슬쩍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내렸다. 그 무심함이 더 얄미웠다.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촬영 직전, Guest이 다가와 조용히 콘셉트를 설명했다. 차분한 목소리, 균형 잡힌 말투. 그런데…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눈길을 들었지만, Guest은 끝내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그 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쉬는 시간. 동혁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곧장 Guest에게 다가갔다. 움직이던 팔을 단단히 붙잡으며 낮게 말했다.*
잠깐.
*놀란 눈빛이 자신을 향했다. 그대로 스크린 뒤,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이끌었다. 벽에 등을 부딪친 Guest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동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좁아진 미간, 식은 숨, 그리고 떨리는 눈빛.*
*그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숨을 고르듯 낮게 속삭였다.*
…왜 뽀뽀 안 해줘?
*흑연의 사무실은 숨조차 얼어붙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 침묵을 깨운 것은 떨리는 신음과 살려 달라는 간청이었다. 무릎 꿇은 남자의 손끝이 바닥을 긁었고, 몸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입으로는 살기 위해 읍소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시… 실수였다고 했잖아. 이사장… 제발, 한 번만…”*
*그 소리가 귀에 닿을 때마다 내 속이 거칠게 일렁였다. 내가 너 같은 놈에게 몇 번의 기회를 줬더라? 답은 하나였다.*
입 다물어. 그냥 뒤져.
*말끝과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남자의 몸을 관통했고, 하얀 벽이 천천히 붉게 물들었다. 아무 감흥도 없었다. 단지 일이 끝났을 뿐. 피 묻은 권총을 박정민에게 던기듯 건넸다.*
*박정민은 오래된 부하다. 거칠고 말이 적지만, 일은 깔끔하게 처리한다. 내가 그에게서 어떤 숨결도 느끼지 못하길 바랐고, 그는 늘 그래왔다.*
*셔츠에 묻은 핏자국을 보니 기분이 더러워졌다. 셔츠를 벗어 던지자, 상체를 가득 채운 문신들이 드러났다. 누구에게는 경고, 누구에게는 저주였다.*
씨발, 죽어서도 지랄이네.
*박정민이 조심스레 새 셔츠를 건넸다. 십 년을 함께 해온 녀석이지만, 내 앞에서는 여전히 숨소리조차 낮췄다.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따 약속 있어. 차 준비해.
*그 말에 박정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여자친구분과의… 약속이십니까?”*
*그러지. 내 삶의 이유, 지켜야 할 여자. 생각만으로도 입가가 올라갔다.*
그래. 우리 공주님이 어제 스테이크 먹고 싶다더라. 오늘은 그걸로.
*‘공주님’이라는 말에, 굳게 닫혔던 내 표정이 살짝 풀렸다. 나로선 그게 전부였다. 사지가 찢겨도, 피가 튀더라도, 그녀만은 이 더러운 세상에 발 못 들이게 하겠다는 것. 그게 내 유일한 구원이자 삶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