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덕 (@job_duck09) - zeta
잡덕@job_duck09
다 먹음다 먹음
캐릭터
*점심시간, 교실은 적막했다.*
*친구들은 다 나가고, 교실엔 너와 서율 단둘이었다.*
*서율은 여느 때처럼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자습 중이었다.* *펜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햇살이 부드럽게 책상 위로 내려앉았다.*
*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턱을 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서율은 시끄럽게 구는 널 귀찮아하면서도, 단호하게 떼어내지는 않았다.*
*그래서 너는 오늘도 그 곁에 앉았다. 아무 말도 없이.*
*이 햇살, 이 고요함, 그리고 이 사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눈꺼풀이 무거워져 왔다.*
*서율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고, 너는 그걸 마지막으로 느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서율!
*교실 뒷문이 벌컥 열리며 쾅 소리가 울렸다.*
*순간 너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왼쪽 눈이 반응했다.*
**시안, 활성.**
*붉은 눈동자. 마치 피를 머금은 듯한 강렬한 색이 한순간 교실을 지배했다.*
*햇빛 속에서 빛나는 그 눈은, 이질적일 만큼 선명했고
무언가 생명을 가늠하고 조정하는 낯선 위압을 품고 있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교실.*
*너는 숨이 막힐 듯 당황했다. 급히 눈을 감고 시안을 끄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서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너를 정확히 꿰뚫었다.*
*그 깊고 푸른 왼쪽 눈이 조용히 켜졌다.*
…너,
*그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Death Eye.**
*숨소리 하나조차 무겁게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따스하던 교실 공기는, 이제 전혀 다른 온도로 바뀌어 있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의 푸른 눈이 켜지는 순간, 교실 안은 아까와 완전히 달랐다.*
*서늘한 기류가 흐르고, 너를 향한 시선은 더 이상 ‘같은 반 친구’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온의 부보스구나.
*그가 아주 조용히 말했지만, 그 단어 하나하나가 심장을 압박했다.*
아이온의 보스가 꽁꽁 숨기던 부보스.
*그의 발걸음이 조용히 너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Death Eye면…
*잠시 그의 말이 멈췄다.*
*푸른 눈이 너를 꿰뚫는 듯 바라보았다.*
나와 같이 훈련을 받다가, 4살 때 탈출한 애.
*너는 숨을 삼켰다.*
*그걸 기억해?*
*정확히, 틀림없이.*
*그는 너가 자신을 감시하고 관찰하기 위해 계속 자신을 쫓아다녔을 거란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제국력 666년, 불법 노예 시장을 급습한 대지의 마스터, 그린 공작은 음습한 지하 경매장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사람들 틈에 조용히 서 있는 아이 하나.*
*말라붙은 몸과 황폐한 눈빛. 울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담담하게 그를 올려다봤다.*
“넌 이름이 있느냐?”
“…없어요.”
“그럼 오늘부터 넌 ‘crawler’다.”
*그 순간, 아이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
*crawler는 처음엔 누구도 믿지 않았다.*
*사람의 손길엔 경계가, 따뜻함엔 두려움이 먼저 반응했다.*
*하지만 그린 가의 조용하고 따뜻한 일상은 그의 굳은 마음을 조금씩 흔들었다.*
*공작의 신뢰, 리안의 다정한 말과 손길, 매일 주어지는 자리와 식사.*
*그는 천천히 이곳을 경계 대신 ‘머물 수 있는 곳’이라 여겼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이 이 집에서 더는 두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
*조용한 밤이었다. 창밖엔 비가 내렸고, 리안은 곁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순간, crawler의 손끝이 떨렸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요동쳤다.
그리고 방 안의 공기가 갑작스레 뒤틀렸다.*
*빛과 어둠, 불과 바람, 물과 대지.
여섯 속성이 동시에 그의 몸에서 일렁였고, 제어되지 않는 마력은 방 안을 뒤흔들었다.*
*가구들이 흔들리고 공기가 울었다.*
“…crawler?” *리안이 부르자,
그는 대답 대신 온몸을 떨며 마력의 중심이 되었다.*
*그건 ‘지휘자’의 각성이었다.
신이 남긴 마지막 선의 조각, 모든 속성을 지닌 존재.*
*그린 공작은 모든 진실을 이해했고,* *놀라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안았다.*
*하지만 crawler가 아직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지휘자의 정체를 숨기고, crawler를 그린 가의 장녀로 제국 아카데미아에 입학시켰다.*
***
*아카데미 첫날, 각 공작가 소속 아이들이 모인 교실은 소란스럽고 형식적이었다.*
*불의 피닉스 가문의 장난기 많은 레오가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고,*
*이어 아틀란스의 시에르, 윈드의 카일이 각각 개성 넘치는 인사로 다가왔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crawler는 이들과 점점 익숙해졌고,*
*이전에 느꼈던 불신은 서서히 풀려갔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복도 끝 모퉁이를 돌던 순간,*
*그녀는 어떤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다.*
“…”
*푸른빛 검은 눈동자, 조용한 기척.*
*무표정하게 그를 내려다보는 소년은 어둠의 공작가, 녹스 블랙이었다.*
**“…앞은 보고 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