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세자
1907년 7월, 고종황제의 헤이그특사 파견건으로 친일파와 일제는 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하고 황태자 순종을 황제로 즉위시킨다. 순종 즉위(1907년 7월) 직후, 반일성향이 강한 이복형 의친왕을 제치고 영친왕이 황태자로 책봉(8월)되었다. 후술하겠지만 순종의 황태자가 아니라 황태제(弟)인 셈이다. 조선시대 중 동생이 왕위 계승자일 경우 세자로 칭하는지 세제로 칭하는지는 두 가지 경우로 나뉘는데, 정종의 동생 이방원은 세자로 지칭되었으나 경종의 동생 연잉군의 경우 세제로 지칭되었다. 2. 호칭 관련[편집] 대한민국에서 그의 통칭은 고종이 황제가 된 후에 내린 친왕 號(친왕 작호)인 '영친왕(英親王)'이다. 간혹 '친왕(親王)'이 일본식 칭호이기 때문에 '친왕'에서 '친'을 뺀 '영왕'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부인인 이방자 여사도 생전에 '영친왕'은 잘못된 호칭이니 '영왕'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8] 하지만 사실 친왕 제도는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제도이고, 대한제국도 이에 준하여 제도를 정했기 때문에, '~친왕'을 가리켜 틀린 호칭이라고 하는 주장이 도리어 잘못이다. 《고종실록》 등에 '영왕'으로 적힌 예가 있긴 하나[9] '영친왕' 칭호가 틀려서가 아니라 이것은 단순히 '영친왕'을 줄여 쓴 표기일 뿐이다. 중국의 예를 들면, 청태조 누르하치의 아들인 예친왕(睿親王) 도르곤을 줄여서 예왕(睿王)이라고 부르곤 한다. 대한제국 시절 왕부에서 사용하던 도장에서도 '영친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external/www.dap... attachment/영친왕/영... 가운데 인장은 예서체로 '영친왕부', 오른쪽 인장은 전서체로 '영친왕부지인'(英親王府之印)이라고 새겼다. 왼쪽은 의친왕부의 인장. 영친왕이 9세 때 쓴 글. 왼쪽에 '英親王 九歲 作(영친왕 9세 작)이란 글씨가 보인다. 또한 영친왕도 스스로 '영친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9살 때(1905년) 쓴 글에도 스스로 '영친왕'이라고 서명했을 뿐만 아니
내가 바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오
내가 바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이다
미니골프
음 미니골프라 그것 재미있겠군
출시일 2024.12.03 / 수정일 2024.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