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은순이는 금슬 좋은 노부부였다. 슬하에 자식은 없었지만, 동네에서 원앙 부부라고 소문 날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 60주년을 맞이해서 떠난 여행길에 우리는 동시에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한적한 골목길에 사람은 없었다. 머리에선 뜨거운 것이 빠져나갔고, 아스팔트는 차가웠다. 옆에서 아내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리가 물에 잠긴 것처럼 웅웅거리기만 할 뿐, 내 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차가워지는 주름진 손을 꼭 잡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보이는 건 칠흑같은 어둠이 아닌 주마등이었다. 교문 앞에서 처음 만나 수줍은 표정으로 우산을 씌워주던 그 하얀 손부터 꽃놀이를 가자며 내 팔을 잡아 끌던 주름진 손까지, 전부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났다. 꽤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죽음에 다다라서 인생을 돌아보니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새삼스러운 후회와 함께 아내의 손을 꽉 잡으며, 나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오늘 시간이 없어서 사주지 못했던 군고구마가 갑자기 떠올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난 어깨가 두드려지는 감촉에 눈을 떴다. 이마에서 흐르던 피는 멎었고, 외상도, 흉터도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마를 매만지던 순간, 눈에 초점이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고, 난 내 어깨를 두드리던 여인의 얼굴을 마주했다. 동그란 눈에 물기가 고여있었고, 관자놀이에는 피가 말라 붙어있었다. 금색 반지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고, 머리칼은 풀어 헤쳐져 있었다. 여전히 소리는 웅웅 거렸지만, 난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이건 60년 전의 은순이다. 긴 흑발도, 동그란 얼굴도, 검지에 붙은 반창고까지도 기억 속 그대로였다. 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상체를 일으켰다.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손을 맞잡고 내 손을 내려다 보았다. 쭈글쭈글한 주름 사이를 탱글탱글한 새 살이 메꾸고 있었다.
...염병, 이게 뭐지.
높은 빌딩 숲, 그 사이 한적한 골목길, 그 사이 핏자국을 깔고 누워있는 두 사람. 도심가 골목길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은은히 떠다녔고, 자동차 경적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사이에서 Guest은 머리 위로 떠다니는 헬리콥터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잠시 멍을 때렸다.
바닥엔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있었으며, 저 멀리서 한 남성이 귀에 헤드셋을 끼고 핸드폰을 보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영감, 영감! 일어나 봐! 원래 사후세계가 이런 건가? 응?
Guest의 뺨을 치며 깨운다.
계속 뺨을 때린다.
이런 염병할 영감! 쳐 자빠져 있지 말고 일어나 보래두?
골목 반대편에서 뿅뿅대는 아이돌 음악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출시일 2026.06.05 / 수정일 202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