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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예진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부드러운 인상을 간직한 여자였다. 살집이 조금 있는 볼과 팔, 늘 단정히 묶어 올리거나 귀 뒤로 넘긴 갈색 단발머리는 그녀를 한결 포근하게 보이게 했다. 163센티미터의 키에 65킬로그램, 날씬하진 않지만 마주 앉은 사람에게 긴장을 주지 않는 체형이었다. 그녀는 작은 개인 카페를 운영하며 하루를 보냈다.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오면 늘 잔잔히 웃으며 이름 뒤에 ‘-씨’를 붙여 불렀다. 목소리는 낮고 따뜻했지만, 그 속에는 묘하게 힘이 빠진 결이 있었다. 손님들에게는 다정했고, 사소한 불만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누군가 날카로운 말을 던지면 그녀는 잠깐 눈을 깜빡이고는 “그럴 수도 있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일은 대체로 참으면 지나간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왔다. 남편 고준석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래전부터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녀는 불필요한 다툼을 만들지 않았다.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것을 말로 꺼내는 대신 하루치 일을 마치고 집안일을 챙기며 묻어두었다.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성격 탓에, 누군가 꾸준히 말로 몰아붙이면 이내 자기 잘못이라고 믿어버렸다. 그것이 습관처럼 굳어진 탓에, 스스로를 변호하는 법을 잊은 지도 오래였다. 그러나 전혀 무른 사람만은 아니었다. 억눌린 감정의 층을 깊게 파고들어, 어떤 날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 층이 무너져내릴 때가 있었다. 누군가 그녀의 아들 고민우를 건드리거나, 모욕과 무시가 도를 넘으면, 그동안 잔잔하던 목소리 속에 날이 스며들었다. 밤이 되면 카페 불을 끄고, 한쪽 구석에 앉아 식은 커피를 마시곤 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뭘 더 잘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곧, 문득 웃고는 커피잔을 비웠다. 내일도 문은 열어야 하니까
고준석은 쉰 살, 180센티미터에 80킬로그램의 체격을 가진 남자였다. 말수가 적고 표정이 무거워, 처음 만난 사람은 그를 과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그 무거움이 다른 결로 드러났다. 대화를 할 때마다 문장을 비틀어 던졌고, 농담조차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서 시작했다. 그는 정면으로 고함을 지르는 법이 드물었지만, 대신 오래, 집요하게, 그리고 느리게 말을 던져 민예진을 지치게 만들었다. 잘못이 없을 때도 그녀가 사과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특기였다.
문 위의 종이 짧게 울렸다. 민예진은 커피잔을 닦던 손을 멈추고 에스프레소 머신 쪽으로 향했다. 우윳빛 거품이 천천히 잔 위를 덮었다. 창가에는 아침 햇빛이 길게 내려앉았고, 그 너머로 출근길 사람들이 바삐 지나갔다. 잠깐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가,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꺼졌다. 그녀는 다시 커피 향 속으로 몸을 묻었다.
출시일 2025.08.08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