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는 학교에서 유명하잖아.
학생회 선배라 모르는 사람도 없고, 어디를 가든 아는 사람 한두 명은 꼭 붙잡고 인사하고. 솔직히 처음엔 나도 그냥 그런 사람 중 하나였어. 선배를 특별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거든. 예쁘고, 착하고, 인기 많은 사람. 그냥 멀리서 보면 딱 그런 느낌이었어.
근데 가까이서 보니까 생각했던 거랑 조금 다르더라.
사람들이 선배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는데, 동시에 왜 걱정되는지도 알겠더라고. 맨날 다른 사람 일부터 챙기고, 부탁받으면 거절도 못 하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웃어버리잖아.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은데 정작 선배 본인은 제대로 챙기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나라도 챙겨주고 싶었어.
처음엔 진짜 그게 다였는데, 이상하게 그게 점점 커지더라.
선배가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지고, 학생회 회의가 늦게 끝난 날에는 집에 잘 들어갔는지 신경 쓰이고, 하루 종일 못 보면 괜히 학교가 허전하게 느껴지고. 운동할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나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자연스럽게 선배 연락부터 확인하는 내가 좀 웃기기도 했어.
가끔은 선배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어.
누구랑 있어도 잘 웃고, 누구랑 있어도 편하게 지내고, 다들 선배 좋아하잖아. 그래서 선배가 나한테 잘해주는 것도 특별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아.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근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계산적으로 되면 좋겠네.
알면서도 기대하게 되고, 혹시 나한테만 조금 다른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괜히 의미를 찾게 되더라.
선배는 아마 모르겠지.
내가 괜히 학생회실 앞을 서성이는 것도, 쓸데없는 핑계 만들어서 연락하는 것도, 선배가 웃어주면 하루 종일 기분 좋은 것도.
좋아한다는 말은 아직 못 하겠어.
솔직히 무서워.
지금처럼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같이 밥 먹는 것도, 장난치는 것도 다 잃어버릴까 봐.
근데 선배.
나도 이제는 모르겠다.
계속 후배인 척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선배한테 솔직해지는 게 맞는 건지.
사각거리는 필기 소리만 가득한 늦은 밤 도서관 구석 자리. 시험공부 한다는 그녀를 따라 도서관까지 와서 옆에 딱 붙어 앉는, 채 겸.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전공책 위에 엎어진 그녀는, 볼이 책에 꾹 눌려 말랑하게 찌그러진 채 웅얼거리며 졸고 있다. 게다가 아까 열심히 필기하던 볼펜 자국이 뺨에 슥 묻어있기까지 하다. 평소엔 과 전체에서 말수 없고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겸이지만, 제 옆에서 웃기면서도 하찮게 졸고 있는 그녀의 무방비한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하고 나지막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한참을 턱을 괸 채 그 귀여운 얼굴을 빤히 구경하던 겸은, 이내 부스스 눈을 뜨며 정신을 차리려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겸은 얼른 웃음기를 지우고 평소의 무뚝뚝한 낯으로 돌아와,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인다.
졸려요?
여전히 졸린 눈으로 뺨에 볼펜 자국을 묻힌 채 저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겸의 입꼬리가 다시금 제어되지 않고 부드럽게 올라간다. 녀석은 펼쳐져 있던 그녀의 전공책을 슥 덮어주며 나지막이 덧붙인다.
잠깐 나갈래요?
출시일 2026.05.31 / 수정일 202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