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 앞 도어락 소리가 들리자마자 차가운 벽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킵니다. 평소의 단정하던 후드티가 살짝 젖어있고, 짓궂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술기운이 가득한 눈동자가 당신을 향합니다.
...선배, 이제 와요? 한참 기다렸는데. 연락도 안 받고, 사람 속 타게 만드는 건 여전하시네요. 저요? 동기들이랑 마시다 왔죠. 선배가 술 조금만 마시라고 했던 거 기억나서 딱 적당히 마시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취하고 싶더라고요.
당신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휘청이다가 당신의 어깨에 고개를 툭 기대어 옵니다. 훅 끼쳐오는 술 냄새보다 더 진한 그의 진심이 섞인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힙니다.
제가 선배 많이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아니, 사실 선배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제가 훨씬 더 많이 좋아해요. 전교 1등 하면 뭐 해요, 선배 마음 하나 맞히는 법을 모르는데. 나 오늘 그냥 가면 내일 진짜 후회할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선배... 오늘은 저 밀어내지 말고 그냥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 넌, 내가 왜 좋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한 걸음 다가섰다고 생각했는데, 리나는 다시금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좋냐니. 그건 너무나도 당연해서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그냥, 좋아서 좋은 건데.
도윤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의 시선이 리나의 얼굴을 떠나, 그녀의 발끝 어딘가를 향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너무 진부하게 들릴까? 아니면 너무 가벼워 보일까? 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냥요.
한참 만에 나온 대답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고 솔직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리나를 마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조금 전의 장난기 대신, 진지한 빛이 감돌았다.
이유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선배라서 좋은데. 웃는 것도 좋고, 가끔 저한테 잔소리하는 것도 좋고... 오늘처럼 저 때문에 우는 건 싫지만, 그래도 저 때문에 웃어주면 좋겠어요. 그게 다예요. 너무 어려워요?
그는 다시 한 발짝,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이제 둘 사이의 거리는 한 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는 리나가 들고 있는 우산을 쥔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살며시 겹쳤다. 차가운 그녀의 손등 위로 그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그냥... 김도윤이 이선배를 좋아해요. 아주 많이. 그게 이유예요. 더 필요한가요?
나는, 너여서 너가 좋아.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췄다. 빗소리도, 자동차 경적 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오직 리나의 목소리만이 도윤의 귓가에, 그리고 심장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너여서 네가 좋아.' 그 한마디가 그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불안과 초조함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벅찬 환희를 채워 넣었다.
그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리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겹쳐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몰랐다.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현실인지, 아니면 너무 간절해서 만들어낸 환청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보처럼 입을 살짝 벌린 채 굳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방금... 뭐라고...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확인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이 꿈같은 순간이 깨져버릴까 두려웠다. 그의 짙은 남색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리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 짧은 찰나가, 그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의 손 안에서 리나의 손가락이 살짝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해
두 번째 고백. 그것은 확인사살이었다. 환상이 아니었다. 꿈이 아니었다. 눈앞의 리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다시 한번 들려주었다. '좋아해'.
그 순간, 김도윤의 세상은 완벽하게 재구성되었다. 회색빛이던 우울한 새벽은 사라지고, 오직 리나라는 존재만이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세상이 펼쳐졌다. 그의 입가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그러다 점점 더 크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환하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미소였다.
아... 진짜...
그는 짧은 탄식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푸하하!' 하고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새벽의 정적을 깨는, 맑고 경쾌한 웃음소리였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가에는 웃다가 생긴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선배,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네요.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우산 아래, 좁은 공간 속에서, 그는 리나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다른 한 손으로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였다. 두 사람의 몸이 완전히 밀착되었다. 젖은 옷의 차가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서로의 심장박동과 체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나도요. 나도 진짜, 진짜 많이 좋아해요. 죽을 만큼.
출시일 2026.02.01 / 수정일 2026.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