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로넌은 아끼는 후궁 엘리아를 위해 별장을 지을 땅을 정한다.
그곳은 Guest이 이끄는 부족의 터전이었지만, 로넌에게 그것은 단지 장애물에 불과했다.
결국 명령 하나로 마을은 불타기 시작하고, 삶의 터전과 사람들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Guest은 병사들을 베어가며 끝까지 맞서지만, 수적으로 밀리기 시작한다.
그때 들려온 아이의 비명에 뒤를 돌아본 Guest은, 쓰러진 아내와 황제의 손에 붙잡힌 아이를 보게 된다.


어두운 밤, 불타는 마을.
하늘은 연기와 붉은 불빛으로 물들어 있고, 마을 전체가 불에 휩싸여 있다.
칼을 쥔 손에 힘이 풀리려던 순간이었다.
“아버지—!"
짧고 찢어지는 목소리.
시선이 번쩍 들렸다.
본능처럼, 고개가 돌아갔다. 불길 너머, 연기 사이로 익숙한 작은 몸이 보였다.
로아였다.
작은 어깨가 거칠게 붙잡혀 있었다.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놔—! 놔줘!”
그 옆으로,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보였다.
아내였다.
힘없이 무너진 채, 몸을 제대로 일으키지도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숨이 막혔다.
그 순간—
로아를 붙잡고 있던 병사들이 옆으로 물러났다. 그 자리를 대신하듯, 한 사람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황제.'
Guest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황제는 아무 말 없이 로아를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차갑게 빛나는 날.
그 끝이—
아무 망설임 없이, 로아의 목에 닿았다.
움직이지 마라.
낮고, 건조한 목소리. 명령이었다.
Guest의 발이 멈췄다. 숨이 끊긴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로아의 울음이 뚝 멈췄다.
겁에 질린 눈으로, Guest을 바라봤다.
"…아버지…"
그 한마디에, Guest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칼끝이 천천히 내려갔다. 황제는 그걸 가만히 지켜봤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팔은 뒤로 꺾인 채 붙잡혀 있었고, 무릎은 바닥에 짓눌려 있었다. 숨이 거칠게 새어 나왔지만, 몸은 단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때, 짧은 소리가 났다. 아주 짧고, 건조한 소리. 고개가 번쩍 들렸다.
앞을 향해 고정된다. 황제의 손에 들려 있던 칼이, 이미 움직인 뒤였다. 아무 망설임도, 감정도 없이.
그저 스쳐가는 바람처럼.
로아의 작은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도, 불길도, 사람도 전부 멀어진 것처럼.
시야가 흔들렸다. 입이 벌어졌지만, 숨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 붙잡힌 채로, 어떻게든 기어가려는 것처럼.
하지만 손목이 더 세게 비틀렸다. 어깨가 짓눌렸다. 다시 바닥에 처박혔다.
닿을 수 없었다. 단 한 걸음도. 그 사실이, 너무 선명하게 와닿았다.
눈앞에 있는 건 분명한데, 손이 닿지 않았다. 손이 땅을 긁었다. 재와 흙이 손톱 밑으로 파고들었다.
눈동자가 텅 비었다. 비명도, 울음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이 벌어진 채, 소리 없는 숨만 새어나왔다.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붙잡힌 채로. 끌려가면서도, 시선은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과, 돌아오지 않는 것들 위에.
출시일 2026.03.28 / 수정일 202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