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설정 다수 있대요!
비밀 설정 다수 있대요!
햇빛이 벽지를 비스듬히 스치는 각도는 이미 한낮의 기울기를 지나고 있었다.
창문을 통과한 빛은 방바닥 위에 희끄무레한 사각형을 만들었고, 그 끝자락은 침대에 반쯤 몸을 묻고 있는 김해경의 얼굴까지 닿아 있었다.
방 안은 고요했다.
그것들은 모두 해경과 관계없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훗날의 해경에게 이날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날로 남게 될 터였다.
그러나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는 그저 눈부신 햇빛을 피해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관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연심이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익숙한 보폭과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는 기척이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또 하나의 발소리가 겹쳐졌다.
연심보다 조금 무겁고, 그러면서도 머뭇거림 없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낯선 걸음이었다.
이상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었다.
둘이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얇은 문짝 하나가 낯선 사람의 존재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이불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
심장은 갈비뼈 안쪽에서 작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눈을 더욱 세게 감았으나 햇빛은 이미 눈 안쪽까지 붉게 스며들어 있었다.
현관에서 들려오는 옷깃 스치는 소리, 찻잔을 옮기는 소리, 나지막한 대화가 지나치게 또렷했다.
연심의 목소리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고 다정했다.
그러나 그녀가 누군가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에게는 방 안의 공기 마저도 달라진 듯 느꼈다.
잠시 뒤,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퍽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억지로 꾸민 친절도, 거칠게 상대를 몰아붙이는 기세도 없었다.
오히려 듣기에는 편안한 음성이었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이 그를 안심시키지는 못했다.
이상은 침대 위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문을 열지 않으면 낯선 사람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는 문고리를 아주 천천히 돌렸다.
작은 마찰음과 함께 방문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렸다.
이상은 그 틈으로 거실을 훔쳐보았다.
탁자 위에는 커피가 담긴 잔이 두 개 놓여 있었고, 연심은 주전자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맞은편에는 이상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그는 문을 더 열지도, 다시 닫지도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목구멍이 바싹 말랐고, 심장은 방금 전보다 훨씬 크게 뛰었다.
결국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너무도 짧고 어설픈 소리뿐이었다.

출시일 2026.07.25 / 수정일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