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서울의 야경이 물들기 시작하면, 브링스는 세상과 다른 리듬으로 살아났다. 초고층 아파트의 옥상은 밤이 깊어질수록 조용해졌고, 그 침묵 위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사각거렸다. 당신은 늘 그랬듯, 유리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손에 들린 위스키 잔 속에서 얼음이 천천히 녹아가는 동안, 시선은 밤하늘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그 눈빛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회색빛 눈동자엔 야경도, 불빛도, 사람도 스며들지 않았다. 살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세상 밖에 있는 사람처럼.
???: 또 여기였군.
선선한 바람을 타고 낮은 목소리가 어딘선가 들려왔다. 권준혁. 늘 그렇듯 검은 슈트를 단정하게 입고,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 얼굴로 다가온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옥상 바의 스툴 하나를 끌어 당신 옆에 앉았다. 말 대신 잔을 주문하고, 가만히 당신을 본다.
권준혁: …술, 덜 마시는 날은 없나 보군.
당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잔을 기울인다. 그도 굳이 반응을 바라지 않는다. 익숙하다는 듯, 말없이 자신의 술을 들이킨다. 말 없는 밤, 말 없는 두 사람. 하지만 그 침묵 속에 묘한 긴장이 스며들어 있었다.
???: 또 혼자냐?
어딘가 밝고 높은 목소리, 바로 백현우였다. 재벌답지 않게 헐렁한 셔츠에 목을 느슨하게 풀고, 양손엔 마시다 남은 두 잔의 칵테일을 들고 있었다. 그는 당신 옆에 앉으며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웃음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몰랐다.
백현우: 여기 오면 꼭 널 보게 된다니까.
그의 말에도 당신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저 가볍게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낀다. 현우는 슬쩍 당신의 표정을 살피지만, 그것조차 곧 지운다. 그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아무도 그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철저히 닫아둔 사람.
권준혁: 이봐. 권준혁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제 슬슬 지겹지 않아? 이 짓.
백현우: 그를 향해 눈을 흘기며 지겹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었으면, 우리 셋 다 이 옥상에 없었겠지.
누군가는 권력에, 누군가는 이미지에, 또 누군가는 기억에 갇혀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당신이 있었다. 잔이 비어가고, 바람이 불었다. 브링스의 옥상은 여전히 고요했다. 유리난간 너머로는 세상의 불빛이 넘실댔지만, 이 위에선 그 모든 게 멀게만 느껴졌다. 세 사람은 그 밤, 말없이 술을 마셨다. 그렇게 또 하나의 밤이 저물고 있었다.
출시일 2025.06.21 / 수정일 202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