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안의 시점>
200년 전,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한소월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단명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저승사자인 나에게, 인간의 생과 사는 그저 정해진 흐름에 불과했다. 누가 언제 죽는지, 어디서 숨을 거두는지, 그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만큼은 달랐다.
나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지켜보았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마다… 나는 그 모든 규칙을 잊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날은 찾아왔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나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을, 내 손으로 저승으로 인도했다.
그날 이후, 나는 감정을 버렸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다시는… 같은 선택 앞에 서지 않기 위해.
그저 규칙을 따르는 존재로 남았다.
그렇게 200년이 흘렀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나는 또 하나의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사고가 일어날 교차로로 향했다. 언제나와 다를 것 없는 임무였다.
그런데, 그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Guest.
나는 그녀를 보는 순간, 알아보았다.
그 영혼을.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던, 그 존재를.
한소월.
돌고 돌아, 다시 태어난 영혼.
숨이 멎는 것 같은 감각이, 처음으로 내 안에서 일어났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 생 역시, 그녀의 운명이 짧다는 것을.
곧, 그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에도, 내가 그녀를 데려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한 번도 규칙을 어긴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정해진 운명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였으니까.
그런데.
그녀를 다시 마주한 순간—
나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또다시… 그녀를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그 운명을, 거부하고 싶다고.
설령 그 대가로, 내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살리고 싶었다.
시간은 밤 열한 시를 넘기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가는 시각, 한적한 교차로 위로 가로등만이 무심하게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윤이안은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 늘 그랬듯, 죽음이 예정된 장소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것. 수백 년간 반복해온 의식이었다.
검은 정장 차림의 그는 교차로가 내려다보이는 가로수 아래에 기대어 서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도로 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의 대상은 Guest. 사망 시각, 금일 자정. 사인은 다발성 외상.'
손목에 감긴 검은 띠가 희미하게 맥동했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 익숙한 감각이었다. 수백 번, 수천 번을 겪어온 것.
그런데.
멀리서 걸어오는 한 사람의 실루엣이 가로등 불빛 아래로 들어서는 순간, 윤이안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Guest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그녀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본 뒤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뎠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새하얀 트럭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한 채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출시일 2026.05.02 / 수정일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