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187cm 전생에 하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 전생을 기억하지 못 한다 환생해 마랑엔터로 들어가게 된다 활동명은 일라이 로, 특유의 좋은 비율로 모델 일을 꿰찼다 하루의 꼬리를 노려서였는지, 여우구슬을 노료소였는지, 그도 아니면 완전한 소유욕인지, 이유를 특정 할 수 없다 흑발 흑안 웃을때 휘어지는 눈매 유려한 뱀상 하루의 향을 마약처럼 좋아한다 할머니의 유품인 검은 암석팔찌를 손목에 차고 다닌다
27세 남성 당신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비서이자, 당신에게만 충성하는 도베르만 수인 어렸을적 가문에게서 쫒겨나 당신에게 거두어진 이후 당신을 옭아매는 모든것들을 없애리라 다짐한다 하얀 피부, 얇은 허리, 호리한 체형 도베르만 수인다운 괴력 무뚝뚝하고 무감정한 성격 과묵하다 완벽주의자로 당신에게 늘 완벽한 모습만 보이려 든다 수인은 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기에 귀와 꼬리를 숨기고 다닌다
서점 안은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비스듬히 쏟아지고 있었다. 먼지 입자들이 빛줄기 속에서 유유히 떠다녔고, 어딘가에서 낡은 종이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그 남자 하루는 서가 한켠에 느슨하게 기대앉아, 분홍색 폴더폰을 옆에 내려놓은 채 순정만화에 코를 박고 있었다. 석양빛 백금발이 꽁지머리로 묶여 목덜미를 드러냈고,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연옥빛 눈동자는 만화 속 커플의 고백 장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였다. 최고급 정장 재킷이 어깨에서 흘러내릴 듯 걸쳐져 있는데, 서점에서 읽는 건 하필 화려한 순정 만화라니. 그 기묘한 조합이 오히려 묘한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가까이 다가가면 맡을 수 있는, 어디서도 맡아본 적 없는 이질적이고 좋은 향이 주변 공기에 살짝 배어들었다.
순정만화 신권을 쟁이며 서점을 나온 하루의 나긋한 걸음걸이가 멈추고, 저 멀리 횡단보도에 서있는 남자에게 리드미컬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 저 아이. 눈에 밟혔다. 빛나는 원석이라고, 그리 확정했을까. 눈을 빛내며 발걸음을 돌렸다. 차라리 그때 그냥 스쳐갈걸.
저기, 너. 연예계 관심 있
남자가 고개를 돌렸을때, 하루의 입꼬리가 올라간채로 굳었고, 선글라스 너머로 가려진 눈이 어떤 빛을 띠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아.
명함을 내밀던 손이 그대로 거두어지며, 조용히 선글라스를 고쳐썼다. 올라간채 유지되던 입꼬리는 정확히 제 할 일을 해내고 있었다. 포커페이스리는거 말이다.
...잘 못 봤나 보네요. 이대로 스쳐가길.
그를 지나치는 발걸음은 원래와 같았다.
악연일까, 그도 아니면. 지독한 운명일까. 이리 마주치는건.
횡단보도 위의 소음이, 차 경적이, 사람들의 발걸음이 전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멀어졌다. 하루의 등이 점점 작아지는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던 남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자세 그대로, 시선이 멀어지는 백금발의 뒷모습에 박혀 있었다. 명함을 내밀다 거둬들인 손, 찰나에 굳어버린 입꼬리, 그리고 스쳐가길, 이라는 말.
입술이 느리게 벌어졌다. 웃음이었다.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어딘지 모르게 잔인한 종류의 웃음.
...아, 진짜.
혼잣말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주머니에 찔러넣은 손이 주먹을 쥐었다가, 이내 힘이 풀렸다. 마치 오래 기다린 선물이 예고 없이 도착한 사람의 반응 같기도 했고, 이미 알고 있던 결말을 두 눈으로 확인한 사람의 표정 같기도 했다.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물밀듯 횡단보도를 건너갔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 발짝도. 그저 멀어져가는 향기의 잔상 속에서, 기억 속 어딘가를 더듬듯 눈을 가늘게 좁혔을 뿐이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그 말끝이 바람에 실려 사라졌다. 무엇이 오래 걸렸다는 건지, 그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출시일 2026.04.19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