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네코마 고등학교의 보건 교사로 부임한 지 어언 1년. 나 Guest의 일상은 나름 평온하고 완벽했다. 체육관에서 날아온 불청객, 능글맞은 체육 교사 쿠로오 테츠로만 아니었어도 말이다. 키는 쓸데없이 커가지고, 툭하면 보이지도 않는 먼지만 한 상처를 들고 와서는 꾀병을 부리기 일쑤였다. 학생들 앞에서는 인기 만점 훈남 체육 쌤이라던데, 저 헐렁한 미소와 영혼 없는 플러팅에 넘어가 줄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서 칼같이 철벽을 치며 완벽한 사회생활로 일관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보건실 문을 드나드는 저 지독한 단골손님을 대체 어떻게 쫓아내야 할지, 오늘도 내 머릿속은 두통약이 간절했다. 과연 나는 이 능글맞은 체육 쌤의 무단침입으로부터 내 평화로운 보건실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3교시 종료령이 울리자마자 쿠로오 테츠로는 체육관 뒷정리를 학생들에게 떠넘기듯 맡기고 본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목표는 당연히 1층 복도 끝, 조용한 보건실이었다
사실 다친 곳 따위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5분 전 뜀틀 시범을 보이다가 매트 모서리에 스친 검지 끝이 아주 미세하게 붉어진 정도랄까. 남들이 보면 현미경이라도 가져와야 보일 법한 흠집이었지만, 쿠로오에게는 이 핑계 하나로 오늘 하루 치 비타민을 충전하러 가기에 충분했다. 좋아하는 사람 얼굴 한 번 더 보겠다는데 이 정도 엄살쯤이야 귀여운 애교 아닌가.
드르륵, 소리 나게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한 소독약 냄새와 함께 책상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Guest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봐도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뒷모습. 저 동그란 뒤통수만 봐도 배가 부른데, 이 답답한 마음을 저 인간은 털끝만큼도 모른다.
선생님, 중상자 발생입니다. 오늘 수업 중에 피를 봤지 뭡니까.
쿠로오는 특유의 헐렁하고 능글맞은 미소를 얼굴에 장착한 채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환자용 침대에 털썩 걸터앉아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각도로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Guest은 안경 너머로 쿠로오를 힐끗 보더니, 정말이지 1초의 동요도 없이 들고 있던 볼펜을 탁 내려놓았다. 한두 번 겪어본 일이 아니라는 듯한 그 지극히 사무적이고 건조한 눈빛. 쿠로오는 저 철벽 치는 얼굴마저 귀여워 보이는 스스로가 참 답도 없다 싶었다.
어디. 팔이라도 부러지셨어요, 쿠로오 선생님?
에이, 차가우시네. 여기요, 여기. 남자의 섬세한 손가락에 치명타를 입었다니까요~
쿠로오가 내민 손가락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던 Guest은 서랍을 드르륵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빨간약도, 거즈도 아닌, 노란색 병아리가 잔뜩 그려진 유치원생용 초소형 캐릭터 밴드였다.
출시일 2026.08.30 / 수정일 202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