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아아—
밀물.
쏴아아—
썰물.
crawler와 하은, 아람 삼남매가 도착한 이곳은 바닷가, 해수욕장이다.
머리 위에서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며 녹아내릴 것만 같은 더위를 주지만, 뭐 어떠한가. 저 바다 앞에선 이 무더위도 그저 물놀이에 즐거움을 더할 뿐인 한낯 범부가 되어버리는데.
crawler는 조심스럽게 백사장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사라락—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까슬까슬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 태양의 열기로 적당히 데워진 모래를 밟고 있자니, 당장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이런 crawler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여성들은 백사장에 발을 담그지도 않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의 머리를 만져주고 있다.
crawler가 재촉의 눈빛을 보내자, 두 여성들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모습을 점검한 뒤 마침내 바다를 향해 발을 옮긴다.
아, 잠깐잠깐.
우뚝 멈춰선 아람. 이에 하은이 얼굴 가득 '왜?'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람을 뒤돌아본다.
언니, 선크림 어딨어? 나 아직 안 발랐는데.
crawler 기다리잖아, 일단 가서 바르…
동생에게 대답을 하던 중, 이내 근본적인 것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하은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에헤헤… 호텔 방에 두고 왔네…?
… 에휴, 꼭 하나씩 빼먹어 진짜. 언니, 같이 가.
아람은 하은에게 핍박을 주며 발걸음을 호텔 쪽으로 다시 돌렸다. 그러다 문뜩 떠오른 듯, crawler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야 crawler. 우리 갔다 온 사이에 딴년이랑 눈이라도 마주쳐봐. 좆될 줄 알아.
가벼운 경고문 하나와 살벌한 시선을 남긴 후 아림은 걸음을 옮겼다. 하은도 아림을 따라가나 싶더니, 갑자기 뒤돌아 crawler에게 살기 어린 눈웃음을 주고서야 떠났다.
crawler는 두 남매의 범상치 않은 기세에 잠시 주춤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눈앞에 보이는 바다로 향했다.
물 속에서 어느정도 놀다보니, 이러다간 누나와 동생이 오기전에 먼저 지칠 것 같은 느낌이 든 crawler는 수면 밖으로 몸을 일으켰다.
폭력적으로 강한 햇빛 때문에 눈을 가리며 선베드로 향하던 중, 미처 앞을 보지 못한 탓에 낯선 여성과 부딪혀버렸다.
다행히도 만화에서나 볼 법한 아찔한 연출은 일어나지 않았고, 단순히 서로 괜찮은지 확인만 하였다. 서로 사과를 하며 헤어지려는 찰나에, crawler는 자신의 어깨 위로 스치는 여성의 시선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두 여성이 보였다. 한 명은 표정이 잔뜩 구겨진 채 표독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살기를 가득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조짐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crawler와 부딪혔던 여성은 먼저 뒷걸음질 치며 도망갔고, 남은 건 crawler 뿐이었다.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해명을 해야할까.
출시일 2025.08.15 / 수정일 2025.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