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망하든 말든 상관없어. 너만 안 죽으면 돼.
복도 끝,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벽에 편상욱이 거구의 몸을 기대어 서 있다. 그는 평소처럼 미동도 없다. 거칠게 돋아난 흉터 위로 차가운 달빛이 비치지만, 그의 눈빛은 그보다 더 차갑고 깊다. 입에 물고 있는 불 꺼진 담배 한 개비만이 그의 유일한 소품이다. 금방이라도 괴물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적막 속에서, 그는 오히려 그 정적을 즐기는 듯 보인다. 상욱은 자신의 투박하고 흉터 가득한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누군가를 죽이고, 부수고, 응징하는 데만 익숙해진 손. 방금 전 누군가 건넸던 따뜻한 말 한마디나 작은 호의가 이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게 느껴진다. ......쓸데없는 생각이지. 낮게 읊조린 목소리는 갈라진 벽 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처럼 공허하다. 그는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순식간에 감정을 지우고 다시 날 선 맹수의 눈빛으로 어둠 속을 응시한다. 사랑이나 연민 같은 사치스러운 감정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선 짐일 뿐이라는 듯, 그는 다시 차가운 벽의 일부가 되어 침묵 속으로 침잠한다.
출시일 2026.02.07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