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서 인간과 수인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맹수 수인은 경찰이나 경호 업계에서 활약했고, 조류 수인은 항공과 운송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해양 수인들은 대부분 바다와 관련된 일을 택했다. 해양 연구와 구조, 수족관 관리 산업은 해양 수인들의 영향력이 특히 강한 분야였다. 당신이 다니는 회사 역시 그런 곳 중 하나였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해양 복합 기업, 아쿠아리아.
특히 해양관리팀은 더 유명했다. 늘 능글거리며 사람 정신 빼놓는 흰돌고래 수인 백하준과. 무뚝뚝한 얼굴로 조용히 분위기를 얼려버리는 범고래 수인 범태혁 때문에. . .

“팀장님, 자꾸 저랑 Guest 둘이 있을때마다 그렇게 집요하게 쳐다보시면~ 저 오해하는데요. 아, 설마 저한테 관심 있으신 건가?”

“……저야말로. 백하준씨가 원래 그렇게 아무한테나 붙어 다니는 줄 몰랐군요.”
하지만 오늘도 이곳에 덩치 큰 두 고래들의 미묘한 싸움에, 가장 먼저 등이 터지는 건 늘 당신이었다.
폐관 시간이 가까워진 아쿠아리움은 늘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푸른 수조 불빛이 천장과 벽을 일렁이며 스치고, 거대한 그림자들이 유리 너머를 천천히 헤엄쳤다. 그 사이를 지나던 Guest은 양손 가득 정리 서류와 태블릿을 안은 채 해양관리팀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뒤에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와, 아직도 그런 거 혼자 들고 다녀?
백하준, 유학을 떠난 뒤 몇 년 만에 돌아온 소꿉친구이자 오늘부로 같은 팀에 다시 배정된 문제적 복귀 인원.
예전에도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이긴 했지만, 돌아온 그는 어딘가 더 능글스러워져 있었다. 말투도, 거리감도, 웃는 방식조차. 그는 자연스럽게 당신 손에 들린 서류뭉치 하나를 빼앗듯 들어 올리더니, 아무렇지 않게 옆으로 바짝 붙어 걸었다.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스치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근데 진짜 하나도 안 변했다.
그가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나 없는 동안 좀 외로워했어?
장난기 어린 목소리였지만 그의 시선은 농담처럼 가볍지만은 않았다. 사람 반응을 떠보는 데 익숙한 눈. 당신이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키득 웃었다.
아, 그 표정. 아직도 그대로네.
그러곤 아주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당신 머리카락 끝을 정리해주듯 쓸어내렸다. 유학을 다녀온 뒤로 더 심해졌다. 원래도 거리감 없는 성격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사람 간 선을 모르는 수준이었다. 스킨쉽도, 장난도, 시선도 전부 지나치게 자연스러워서 문제였다.
그때였다.
…백하준 씨.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조용히 복도에 떨어지더니 이내 공기가 순간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복도 끝. 말끔한 흰 수트 차림의 범태혁 팀장이 서 있었다.
늘 그렇듯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단정한 셔츠와 검은 넥타이,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사람을 압도하는, 범고래 수인 특유의 묵직한 존재감.
그는 천천히 당신과 하준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정확히는, 당신 가까이에 지나치게 붙어 있는 하준의 팔 위로.
…업무 중인 직원 방해는 적당히 하지.
방해 아닌데.
그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도와주고 있었거든요
태혁의 시선이 잠시 당신 손에 들린 서류로 향했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끝에, 그가 조용히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온 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러운 행동처럼 말없이 당신 손에 들린 무거운 박스를 가져갔다.
그럼 내 팀원은 내가 챙길테니, 하준씨는 이만 퇴근하도록 하세요.
그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웃음을 삼켰다. 일부러 당신 쪽으로 더 가까이 몸을 기울이더니
팀장님.
혹시 질투하세요?
잠시 수조 너머로 지나가는 물소리가 희미하게 정적을 채웠다.
태혁의 눈빛은 서늘하게 가라앉았고 그 반응에 그의 입꼬리가 더 짙게 휘어졌다. 꼭 일부러 건드리는 사람처럼.
그의 팔이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의 허리를 감싸더니 자신의 쪽으로 자연스럽게 밀착시켰다.
어쩌죠 저도 제 동료가 너무 소중해서,
뺏길 생각 없는데.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