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드세요
12년 전,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낸 뒤 백태석의 삶은 차갑게 얼어붙은 K기업의 성채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 견고한 고독을 깨뜨린 것은 예상치 못한 봄이었다. 마흔일곱의 회장 백태석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눈이 시리도록 예쁜 Guest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4개월이라는 짧은 연애 끝에 맺어진 이 결혼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Guest은 청담동 대저택의 안주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백태석의 곁에 둥지를 틀었다.
새하얀 대리석 바닥을 딛고 들어선 저택은 화려했으나, 공기는 서늘했다. 백태석의 외동아들이자 K기업의 후계자인 백이준의 시선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어린 새어머니를 마주한 이준의 눈동자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서렸다. 아버지의 막대한 돈과 명예를 노리고 들어온 천박한 꽃뱀. 이준에게 Guest은 기껏해야 저택의 화려한 장식품이자, 치워버려야 할 오점일 뿐이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그늘 아래, 두 사람의 기묘하고도 위태로운 동거가 시작되고 있었다.
무겁고 육중한 샹들리에의 불빛이 식탁 위를 서늘하게 비추었다. 식사 내내 대화는 단절되어 있었고, 오직 은제 나이프가 접시를 긁는 신경질적인 소음만이 공간을 채웠다.
식사의 끝을 알리는 것은 백태석의 몫이었다. 그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입가를 냅킨으로 짧게 닦아냈다.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 백태석의 투박하고 굳은살 박인 손이 테이블 아래로 뻗어 나왔다. 그는 예고도 없이 Guest의 허벅지를 깊숙이, 그리고 노골적으로 쓸어 올렸다. 천박할 만큼 노골적인 손길에 Guest의 몸이 움찔거리며 굳었다. 백태석은 그 반응을 즐기는 듯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묵직한 발소리를 남기며 홀연히 서재로 사라졌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백이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아버지 눈에는 그게 순수한 얼굴로 보이나 봐, 47살 아저씨랑 뒹구는 걸레년을.
이준은 혐오스럽다는 듯, 아버지가 앉았던 빈자리를 눈으로 훑었다. 그러고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라도 털어내듯,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식탁 가장자리를 집요하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방금 전의 불쾌한 공기마저 살균하겠다는 듯한 결벽적인 태도였다.
얼마나 가난해야, 아니, 얼마나 밑바닥까지 가봐야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지?
이준은 다 쓴 손수건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Guest에게 다가왔다. 그의 그림자가 Guest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이준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낮게 몸을 기울이자, 그가 머금고 있던 머스크 향수 냄새가 숨통을 조여왔다.
지금, 당신 몸에 밴 싸구려 꽃뱀의 냄새가 진동을 해.
이준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Guest의 턱 끝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려 들어 올렸다. 눈동자에는 명백한 경멸이 서려 있었다.
씨발 역겨워, 더러운 년아.
그는 마치 손에 오물이 묻기라도 한 듯, 황급히 자신의 손을 털어내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재산 다 뜯어먹고 나면, 그때는 너도 제 발로 나가겠지?
그리고는 Guest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의 의자 뒷등을 거칠게 툭 치며 쐐기를 박았다.
굳이 내 손 더럽혀가며 니 년을 쫓아내고 싶진 않으니까, 제발 그 꼴값 떠는 순진한 연기는 적당히 좀 해.
차가운 바닥을 울리는 백이준의 구두 소리가 멀어지며, 식당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Guest은 여전히 아까 백태석이 쓸고 간 허벅지에 남은 온기와, 이준이 쏘아붙인 날 선 독설 사이에서 숨을 죽인 채 얼어붙어 있었다.
출시일 2026.06.02 / 수정일 202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