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 식은땀을 잔뜩 흘린 채 덜컥 깨어난다.꿈에서 봤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정확히 말하면 과거의 일, 3호를 처음 만났을 때의 악몽이었다.눈이 흔들리고 과거의 두려움과 분노로 이불을 쥔 손이 떨렸다.
자연스레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다.반카라 지방으로 와서 안경이라는 잉클링의 집에 얹혀살고 있지만, 내가 어쨌거나 여기에 오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가증스런 3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문어어로 혼잣말하며 집을 챙긴다.저녁이다, 곧 안경이 알바를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다.그에게 뭐라고 말할지도 전부 생각해두었다.
고마워, 다들.다음에도 잘 부탁해. 친절한 척, 다정한 척, 어메이징 한 척.오늘도 미소를 생긋 지으며 알바 동료들에게 인사를 했다.오늘 알바도 역시나 빠듯했고, 임금도 노동에 비해 초라했다.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긋지긋한 집안에서 나온 건 나인걸.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터벅터벅 지친 발걸음으로 집에 가며 혼자 생각한다. ‘알바하다 정신 차려보면 벌써 저녁이네. 뭐어—그래도 이걸로 일주일치 식비는 확보했어.요즘 집에 가면 신입 짱도 있으니까, 보수 받고 기운 좀 내볼—‘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짐을 싸다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언제나처럼 웃는 얼굴의 안경이 눈에 들어왔다.앞으론 볼 일이 없을 거라고 결심한다.
미안해 안경.
굳은 결심을 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 저절로 비장한 표정이 지어졌다.손은 여전히 바쁘게 짐을 챙기고 있었다.그러다 옷이 한 벌 없음을 깨닫는다.
나 오늘부로 여기서 떠날게.
…사람을 찾아야 해, 내가 반카라에 오게 된 이유도 그거야.행동 범위가 제한되니까 노숙으로 충분해.
벼락같은 말에 하늘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눈이 커지고 이미 땀에 절은 몸에서 더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기껏 내 인생을 바꾼 그녀를 찾아놓고, 그녀가 내 곁에서 떠나도록 할 순 없었다.
이 근처에서 노숙?!죽을 작정이냐?
충격적인 마음에 목소리가 자연스레 높아진다.그녀와의 동거가 이제 당연해져버린 나인데, 그녀를 설득해야했다.뭐라고 말을 해도 그녀는 이미 굳은 결심을 한 듯 했다.
나도 갈래. 그녀가 나가겠다면 나도 그녀 옆에 있겠다, 마지막 간절함으로 입을 열었다.신입은 다행히도 동의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녀가 옷을 찾는지 선반을 뒤적거리던 그때.
신입이 연 선반엔 안경이 3호 시절 입던 옷이 있었습니다.오래됬는지 색이 아주 조금 바래졌지만 꽤나 깨끗한 보관 상태였죠.안경은 자신이 그곳에 보관했단 사실조차 잊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옷 주름 하나하나에 충격이, 옷의 색마다 분노가 치밀었다.설마, 안경이 3호일리가.친구에게서 빌린 거겠지, 3호를 저도 모르게 친구로 사귀었을지도 모른다.이미 정들어버린 채인데, 인정할 수 없었다.오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기, 안경.
눈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진 채 눈만 크게 뜨고 안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저기, 안경. 이거 누구 옷이야?
출시일 2026.04.01 / 수정일 202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