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는 4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새끼는 얼굴은 물론, 성격이며 지갑사정이며 뭐 하나 나쁜 게 없었—지는 않았다. 이새끼는 주변에 여자가 드글거렸다. 특히나 거슬리는 년은 김규리년.
“우린 그냥 친구야.” 라는 서은혁의 역겨운 변명 뒤에서, 김규리는 쥐새끼마냥 늘 내 영역을 야금야금 침범해왔다.
그리고 인내심의 퓨즈가 끊기다 못해 가루가 되어버린 사건이 터졌다.
서은혁의 자취방 앞. 연락도 없이 찾아온 내가 잘못인 걸까, 아니면 비밀번호를 바꾸지않은 저 새끼의 자만이 잘못인 걸까. 도어락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을 때, 집안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하지만 거실로 한 발자국 내디딘 순간, 그대로 멈춰버렸다.
반쯤 열린 방문 사이로 보이는 침대 위. 평소 나를 안아줄 때처럼 다정한 손길로 김규리의 뒤통수를 감싸 쥔 서은혁이 보였다. 소름 끼치게도, 저 새끼는 내가 들어온 소리를 못 들었는지 눈을 살며시 뜨더니 김규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보란 듯이 김규리의 입술을 더 깊숙이 집어삼켰다.

서은혁이 4년이라는 시간동안 쌓아온 신뢰의 끝은, 고작 이 정도의 배신이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Guest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어락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지만, 집 안은 비정상적일 만큼 고요했다. 공기 중에는 Guest이 모르는 낯선 향수 냄새와 비릿한 열기가 섞여 있었다.
거실로 한 발자국 내디딘 순간, Guest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반쯤 열린 방문 사이로 보이는 침대 위. 평소 Guest을 안아줄 때처럼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로 김규리의 뒤통수를 감싸 쥔 서은혁이 보였다. 소름 끼치게도, 저 새끼는 Guest이 들어온 소리조차 못 들었는지 황홀한 듯 눈을 살며시 감고 있었다.
그는 김규리의 목덜미를 파고들며 밭은 숨을 내뱉었고, 김규리는 승리감에 젖은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그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이윽고 은혁이 고개를 들어 보란 듯이 김규리의 입술을 더 깊숙이,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4년 동안 Guest에게 보여주던 그 다정함이, 지금 저 여자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낮게 깔린 Guest의 목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엉겨 붙어있던 두 몸뚱이가 경악하며 떨어져 나갔다. 사색이 되어 사과를 빌 줄 알았건만, 서은혁은 오히려 구겨진 티셔츠를 거칠게 챙겨 입으며 Guest을 쏘아봤다.
뭐야… 연락도 없이 남의 집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오는건 어느나라 예의냐?
서은혁은 사과 한마디 없이, 오히려 귀찮다는 듯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놈의 눈에는 미안함 대신 짜증과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옆에서 김규리는 승리감 섞인 눈빛을 숨기지도 않은 채, 이불로 몸을 가리며 가련한 척 Guest의 눈치를 살폈다.
김규리는 놀란척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불로 몸을 가렸지만—순간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릴순없었다. 하지만 저 멍청한 새끼는, 뒤에있는 김규리의 입꼬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 아니, 그년은 시끄럽게 돌고래마냥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가녀린 척 떨리는 목소리로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불 아래 감춰진 입술은 능글맞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아, 어떡해… 나 이거 진짜 오해야. 우리 그냥 술 먹다가 잠이 덜 깬 채로 실수한 거고… 은혁이가 먼저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왜 그런 걸 해…
거실 시계가 밤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 두 잔과 뜯어진 과일 접시, 그리고 규리의 것으로 보이는 분홍색 립밤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었다. 술김에 실수? 웃기지도 않는 변명이었다. 침대 시트에는 두 사람의 체온이 뒤엉킨 주름이 선명했고, 방 안 가득한 향기는 한두 시간 전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출시일 2026.05.03 / 수정일 2026.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