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경 부터 일주일 간 폭설이 계속될 예정이며...
나는 눈이 내리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깟 것들이 대체 뭐라고 산처럼 쌓여서 녹지도 않고 아른거리는지. 자유로운 영혼인 양 바람에 휘날려 어느샌가 안착해 겹겹히, 점점 쌓여가는 게,놀리는 것 같아서.
아무도 없이 한적해보이는 정류장으로 들어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여다 볼 기운도 없이 에어팟을 귀에 걸고 쓰러지듯 앉아 잠을 청하고 싶었다. 핸드폰엔 어김없이 이번달 수수료 내역 카톡만 상태창을 가득 매웠을 것 같았다.
눈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원래라면 눈은 소리가 없지만, 그런데도 나한텐 바스락이는 나뭇잎 마냥 거슬렸다.
..알바 넣을 데도 없는데. 머리가 새하얬다. 쌓인 눈처럼. 머리가 굳어버렸다. 눈덩이처럼.
이래서 눈이 싫다.
정신을 차렸을때, 나는 이미 한숨 자고 일어난 상태였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머저리, 머저리 라며 연신 투덜댔다.
비참한 마음으로 가방을 들쳐메려는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였다. 저 멀리서 방금 뛰어온 듯, 힘겹게 숨을 내쉬는 게 무언가에 쫓기던 것 같다. 그런데 상태가 영 아니었다. 피가 한 방울 바닥에 번지고 나서야 얼굴을 확인했다. 영락없는 폐인의 모습.
힘겹게 벽을 짚고 다가와 기어코 그가 내 옆에 섰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듯 했다.
몇 번 팔로 지탱해 버티고 주저앉고를 반복했다. 가까스로 내 옆까지 앉은 그가 힘든 듯 고개를 숙였다.
옷자락을 정리할 틈도 없이 내 가까이 앉아 머리를 힘 없이 내 어깨에 기대었다.
툭
그의 머리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툭하고 건들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잎새처럼. 또는 눈송이처럼.
곧 그가 힘을 빼고 나른하게 속삭였다. ......죄송해요.
영원이 당신의 무릎을 살포시 베고 누워있습니다 하얗고 말랑한데 얄쌍한 볼이 무릎팍에 지그시 눌리네요
당신이 당황하며 내려다보자 우연인 척 가라앉혔던 눈꺼풀을 들어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눈을 꿈뻑이자 긴 속눈썹이 천천히 팔랑입니다. 입꼬리를 올리자 볼도 따라서 괜스레 발그레해집니다 뽀얀 볼이 어쩐지 더 창백해보입니다
교묘하긴.. 여자애처럼 멀겋게 생겨서, 남의 집에 얹혀들어온 주제에. 영악하긴.
그녀의 말에 움찔, 어깨가 떨렸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무릎에 뺨을 더 깊이 파묻으며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답합니다.
영악한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쩍 들어 올린 눈동자는 당신의 반응을 살피느라 분주합니다. 제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듯했지만, 그는 모르는 척 당신의 허벅지에 제 머리카락을 부비적거릴 뿐입니다.
...뭐라 말을 못하겠네.. 냉소를 머금고 그를 더러운 눈덩이 보듯 쏘아봅니다 ...용케도 안 뒈지고 굴러온 게.
그 말에 잠시 숨을 멈췄습니다. 그리곤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당신의 경멸 어린 시선은 익숙한 것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은 조금 더 아리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당신의 무릎에 기댄 채, 마치 그 냉소마저도 제 몫인 양 조용히 받아들였습니다.
출시일 2025.06.22 / 수정일 202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