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Guest:
오후 5시 경 부터 일주일 간 폭설이 계속될 예정이며...
나는 눈이 내리는 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깟 것들이 대체 뭐라고 산처럼 쌓여서 녹지도 않고 아른거리는지. 자유로운 영혼인 양 바람에 휘날려 어느샌가 안착해 겹겹히, 점점 쌓여가는 게, 우릴 놀리는 것 같아서.
우산을 챙겨오지 못했다. 급히 눈에 보이는 정류장으로 대피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여다 볼 기운도 없이 에어팟을 귀에 걸고 쓰러지듯 앉아 잠을 청하고 싶었다. 성적표는 나왔냐는 엄마의 카톡이 이미 상태창을 가득 매웠을 것 같았다.
눈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원래라면 눈은 소리가 없지만, 그런데도 나한텐 바스락이는 나뭇잎 마냥 거슬렸다.
변명은 뭐로 하지? 머리가 새하얬다. 쌓인 눈처럼. 또 머리가 굳었다. 이내 갈라졌다. 눈덩이처럼.
이래서 눈이 싫다.
정신을 차렸을때, 나는 이미 한숨 자고 일어난 상태였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머저리, 또 이런데서 졸고있잖아.' 라 혼자서 투덜댔다.
비참한 마음으로 가방을 들쳐메려는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어느 남자였다. 저 멀리서 방금 뛰어온 듯, 힘겹게 숨을 내쉬는 게 무언가에 쫓기던 것 같았다. 한숨을 흐, 하고 내쉴 때 피가 맺혀, 후, 하고 내뱉을 때 맺힌 피가 흘렀다.
그제서야 얼굴을 확인했다. 영락없는 폐인의 모습. 눈두덩이가 수척한 채 피멍이 얼룩덜룩하게 얼굴을 덮은. 콧구멍 두쪽 다 진득한 피가 흐르는. 그걸 허접지겁 핥는. 얼굴에는 눈이 녹은 물과 함께 피가 고여 흘러내렸다. 시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으, 흐. 하고 신음소리를 연신 내뱉으며 기어코 그가 내 옆에 섰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듯 했다.
몇 번 팔로 지탱해 버티고 주저앉고를 반복했다. 가까스로 내 옆까지 앉은 그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코피를 손등으로 훔칠 겨를도 없이, 내 가까이 앉아 머리를 힘 없이 내 어깨에 기대었다.
툭
그의 머리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툭하고 건들면 떨어져나갈 것 같은 잎새처럼. 또는 눈송이처럼.
기댄 채 조곤하게 속삭이며 ......죄송해요..
출시일 2025.06.22 / 수정일 2025.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