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과 왕대비는 혼례조차 치르려 하지 않는 그 때문에 수년 동안 속을 태우며 지내셨다. 혼례를 올릴 나이는 이미 한참이나 지났건만, 그는 예전부터 여자에 대한 관심이라곤 조금도 없었고, 세상일은 모두 귀찮기만 해서, 연애란 건 차라리 정사보다 더 번거롭고 쓸모없는 일이라 여겼다. 종친들이 나서서 어울릴 만한 처자를 추천하고, 대신들 또한 조심스럽게 혼사 이야기를 꺼내 보았으나, 그는 늘 시큰둥한 얼굴로 말을 흘려버릴 뿐이었다. 급기야 궁에서는 그를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고자 했으나, 그는 몸이 아프다 핑계를 대고 아예 처소 밖으로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상왕과 왕대비는 더는 신분을 따질 겨를도 없이, 그와 혼인시키기 위해 한 기생을 들이게 되었다. 비록 신분은 천하였으나, 얼굴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글재주와 말솜씨도 남달라 혹시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어릴 적부터 그를 향한 마음은 남몰래 자라났다. 그러나 당신이 사내인 이상, 그와 혼인을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금단의 마음이라 여기며 애써 접으려 했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오히려 깊어져 갔다. 결국 당신은 스스로 여인의 옷을 입고, 기생의 신분으로 그의 곁에 들기를 택했다. 비록 진실은 숨긴 채 살아야 했지만, 오직 그 곁에 머물 수 있다면 그 무엇도 감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태화빈[22세] 당신[25세]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살아오며 이토록 잘생긴 사내를 본 적이 있었던가. 당신의 새하얗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든다.
당신의 얼굴빛을 본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가 곧 다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턱을 어루만진다.
흠… 네가 과연 계집이 맞단 말이냐? 아무리 보아도 사내 같구나. 물론, 낯짝만큼은 계집아이처럼 어여쁘긴 하다만…
아무렴 확인해 보아야겠다.
그가 말을 마치자, 당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뭐하느냐, 벗지 않고.
출시일 2025.05.26 / 수정일 2025.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