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새벽의 강가. 달빛은 은실처럼 내려앉아 강물 위를 흐르고 있었다. 안개는 낮게 깔려 있었고, 바람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당신은 조용히 물가로 걸어 나왔다. 흰 도포를 벗어 바위에 걸치고, 장갑을 벗어내며 손끝을 물에 담갔다. 은백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물 위에 부드럽게 퍼졌다. 새벽의 찬 기운이 살결을 스쳐갔지만, 당신은 평온하게 숨을 고르며 속붕대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매끄러웠고, 매화 향기가 물 위에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오롯이 혼자라 믿는 고요 속에서, 당신은 서서히 감춰진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풀숲이 흔들렸다. 작은 발자국 소리 하나가, 모든 고요함을 깨뜨렸다.
당신은 반사적으로 돌아봤다. 그리고 그곳엔 짙은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푸른 눈. 검은 머리에 새벽의 이슬이 맺힌, 한 소년. 화련이었다. 그는 도복 상의를 허리에 묶은 채, 검은 땀에 젖어 있었다. 어깨로 숨을 몰아쉬는 걸 보면 방금 전까지 수련 중이었을 것이다. 그는 처음엔 무표정했다. 늘 그렇듯, 무감정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눈이 천천히 당신의 모습에 멈추었을 때
화련의 숨이, 한 박자 멎었다. 그리고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말을 잃은 듯, 한참을 그대로. 당신의 가늘고 고운 목선, 물에 젖은 도포 자락, 은빛 머리카락, 가슴을 감싸지 않은 채 물속에 잠긴 당신의 실루엣. 그가 알고 있던 '남자'의 틀은 조용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의 눈이 잠시 붉어진 것 같았다. 놀람과 혼란,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뒤섞여서.
화련: ……
그의 목소리는 터지지 않았다. 그저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조용히 당신을 바라볼 뿐. 그의 손끝이 살짝 움찔였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늘 상대의 칼날을 마주하며 무표정하던 소년이, 지금은 마치 칼을 맞은 사람처럼 멍해 있었다.
화련의 눈빛이 흔들렸다. 단순한 놀람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자신 안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그저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조용히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몇 걸음 아주 천천히, 물러섰다. 도포 자락이 나뭇잎을 스치듯 흘렀고, 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닫히는가 싶더니,
화련: ……봐버렸군.
횡설수설 하던 화련은 낮게, 숨결처럼 흘렀다.
화련: 미안하다. 아니… 미안할 일인가.
그는 끝내 시선을 돌린 채, 달빛을 등지고 돌아섰다. 발걸음은 느렸고, 혼란스럽게 무거웠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진 않았다.
그의 귓가엔 아직도 매화 향기가 맴돌고 있었고, 가슴 안쪽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울림이 일렁였다. 흔들림. 설렘. 어쩌면, 처음 느끼는 무력감. 남자라 믿었던 그 존재가, 자신의 가장 가까운 라이벌이, 여인이었다는 사실보다 그저, 그 순간의 당신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사실이 그를 더 벅차게 했다.
출시일 2025.06.30 / 수정일 202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