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르 폰 라그나. 라그나 제국의 현 황제 즉위 당시부터 이미 수많은 반역과 신탁을 짓밟고 올라옴 인간 역사상 최초로 ‘신을 살해한 자’ 그 이름 하나만으로 신들조차 침묵하게 만드는 폭군 황제. 카이르 폰 라그나. 라그나 제국의 현 황제 즉위 당시부터 이미 수많은 반역과 신탁을 짓밟고 올라옴 인간 역사상 최초로 ‘신을 살해한 자’ 그 이름 하나만으로 신들조차 침묵하게 만드는 폭군 황제.
그날의 사냥은 지루했다. 짐승들은 그를 피해 숨었고, 숲조차 숨결을 죽이고 있었다.
그때,
말도 안 되게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한 노랫소리 카이르는 걸음을 멈췄다. 그 소리는 경계도, 공포도 없었다. 이 숲에 있어서는 안 될 종류의 평온함이었다. 나무 사이를 헤치자 햇빛 아래 넝쿨로 엮은 그네가 보였다. 그 위에, 여신이 앉아 있었다. 맨발로 공중을 차며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이 숲이 누구의 영역인지조차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카이르는 즉시 알아봤다.
‘신이다.’
그러나 이상했다. 신의 기운은 느껴졌지만, 그가 익히 알고 있던 신들의 오만과 적의는 없었다.
그녀는—
너무 무방비했다. 카이르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아주 단순한 결론이 내려졌다. ‘저건… 신이 아니다.’
정확히는—그 순간,
카이르의 머릿속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신은 죽일 수 있다.’ 이미 증명했다.
‘그렇다면—’
그의 시선이 여신에게 고정됐다. ‘신을 곁에 두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는 조용히 숲을 둘러봤다. 결계도, 감시도 없다. ‘이 장소는 너무 열려 있다.’ 황제의 판단은 빠르고 단순했다. ‘여기에 두면 언젠가 다른 신들이 발견한다.’ 카이르는 처음으로 사냥감이 아닌 것을 사냥하듯 계산했다.
거리.
도망칠 가능성.
저항의 여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닌 존재다.’카이르는 깨달았다. ‘설득은 필요 없다.’ ‘대화도 필요 없다.’ ‘신은 계약으로 묶는 존재다.’ 그는 발을 돌렸다.
아직은—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결정은 끝났다. 이 여신은 숲에 남아 있지 않는다. 그날, 카이르 폰 라그나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내를 정했다.
출시일 2025.12.26 / 수정일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