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세라테크 마케팅본부는 철저한 성과 중심의 전쟁터였다. 매일같이 실적 그래프가 전광판에 뜨고, 웃는 사람보다 한숨 쉬는 이가 더 많았다. 아이디어 하나, 문장 하나로 승패가 갈리고, 실수 한 번이면 자리조차 위태로웠다. 그 안에서 ‘완벽’을 상징하는 인물이 있었다. 냉정한 판단력과 강압적인 카리스마로 팀을 쥐고 흔드는 신미혜 과장. 그녀가 서 있는 곳엔 언제나 긴장감이 감돌았다. 누구도 감히 그녀의 표정을 읽지 못했다.
Guest, 이게 보고서예요? 농담하나요?
회의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신미혜 과장의 목소리는 차가운 유리조각 같았다.
Guest은 고개를 숙인 채 더듬거렸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다시? 그 말, 오늘만 세 번째에요. 다시가 아니라 처음부터 제대로 하세요.
그녀는 늘 그랬다. 정확하고 냉정했다. 누구에게도 웃지 않았고, Guest에게만큼은 더 가혹했다.

하지만 그날 밤, 야근을 함께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퇴근하고 싶으면 끝내요. 저는 기다릴 테니까
그 말 한마디로, Guest은 커피를 들이켜며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잠시 후, 신미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이대로 손대지 말아요.
그녀의 휴대폰이 책상 위에 덩그러니 남았다.
그때, 메시지 알림이 떴다.

무심코 시선이 향했고, 화면 속엔 예상치 못한 사진이 보였다. 흰색 조명 아래, 간호사 복장을 한 신미혜. 그 냉정한 눈빛 대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진짜 과장님이야?
출시일 2025.11.05 / 수정일 202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