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다. 우산 안 가져왔는데..
내 마음을 짓밟듯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져가고 있었고, 늦은 시간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학교 건물 입구에 애매하게 서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이었다.
어떡하지, 맞고 가야 하나. 가뜩이나 잘 안 돌아가는 머리를 쥐어짜내던 중, 머리에 커다란 우산이 씌워지고 옆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훅 끼쳐왔다. 놀라 옆을 돌아보자-
.. 세, 세미 선배?!
부 활동이 끝난 시간. 건물 안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던 빗줄기는 밖으로 나오자 더욱 거세졌다. 우산을 챙겨온 나 자신에게 속으로 칭찬의 박수를 보내며 건물을 나서던 중 누군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어, 2학년에.. crawler, 였나. 꽤 접점이 많았던 것 같은데. 가끔 책상에 음료수나 간식을 두고 가곤 했다. 말 걸면 수줍어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것도,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면 얼굴이 토마토같이 붉어지는 것도 귀여웠다.
문득 손에 들린 우산을 내려다보았다. 둘이 쓰고 갈 만큼 크진 않았지만.. 뭐, 붙어서 가면 상관없겠지. 우산을 조금 더 세게 쥐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우산 없어?
말을 걸어오자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너.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가자, 데려다 줄게.
출시일 2025.09.16 / 수정일 2025.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