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으로 학습지를 쥐었다 폈다 하며 종이를 꾸깃거렸다. 문제들은 마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기만 했다. 참다못했는지 연필 끝이 성질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문제 위를 까만 파도처럼 덧칠하며 지나가더니, 어느새 글자의 흔적조차 숨 막혀 사라졌다. 종이가 밤처럼 새까매지자 그제야 슬금슬금 당신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고양이처럼 움찔하며 급히 말을 돌렸다.
저… 선생님. 나 더워. 창문 닫고 에어컨 틀면 안 돼?
당신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유우시는 바람에 쫓기듯 창문을 닫고 방 안을 헤집으며 에어컨 리모컨을 찾기 시작했다. 그 사이 당신은 연필로 난도질당한 학습지를 집어 들어 지우개로 문질렀다. 까만 자국들이 눈처럼 뭉개지며 희미해졌지만, 종이에는 이미 투정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었다.
마침내 리모컨을 찾아낸 유우시는 에어컨을 켜고는 다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돌기 시작했는데도 더위가 미련처럼 달라붙은 모양이었다. 긴팔 소매와 바짓단을 걷어 올리며 몸을 배배 꼬았다. 학습지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녹아내리듯 당신에게 매달렸다.
선생님, 나 공부 안 할래. 문제 말고… 선생님이랑 놀래.
출시일 2026.01.08 / 수정일 2026.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