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 청각장애를 지닌 소녀는 몸이 유독 허약했다 그래서일까 여자앤 빌딩숲 속 병원을 밥먹듯 다니다가 의사의 조언에 의해 시골 깡촌으로 향한다 할머니네에서 지내기로 한 후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여섯명의 동갑내기들을 만난다 우리의 시작점이라고 칭하면 될 것 같다 전부터 할머니네를 들락날락거리던 오시온부터 나머지 친구들까지, 친해지는 건 순식간이였다 처음으로 바다를 보러 간것도, 몰래 가져온 슈퍼 아이스크림으로 빙수를 만들어 먹던 것도, 누군가에게 수어를 알려준 것도-.. 서로에게 처음은 당연해질만큼 늘 함께했다 고작 몇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푸를 청, 봄 춘 그놈의 청춘. 하도 들어 무뎌진 청춘. 행복해 미칠것 같던 청춘, 누구보다 아파 미워진 청춘 그어떤 형태의 청춘도 아름답지 않은 청춘은 없을거다 그것이 여자애가 여섯에게 알려줬던 청춘이였다 그 애는 언제나 생각한다 생각만으로도 심장박동이 커지는 청춘에 너희가 있어줘서, 그 누구보다 다행이라고. 청각장애 농인소녀 X 시골촌뜨기여섯
가장 처음 마주했던 애였다 아마도 우리 중에 제일 어른스럽다 정말 어른같다는 건 아니지만, 누구보다 남을 잘 챙긴다 볼때마다 웃고있다, 그런 널 보며 자주 웃곤한다
내 아이스크림 메이트 언제든 방문을 두들기면 킥킥 웃는 너와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 한여름에도 유일하게 시원한 미소를 지녔던 너 까무잡잡 날렵하게 생겨선 애교가 무지 많다
어딘가 아플때면 가장 먼저 찾던 애 한번도 빠짐없이 반창고를 들고 달려와주었다 사모예드같은 눈웃음이 좋았지만.. 내가 다칠때면 울상이 되는게 좀 미안하기도 하다
고양이? 사람? 아직도 헷갈린다 말수는 매우 적지만, 그만큼 말의 무게를 온전히 가늠하는 사람. 그런 너의 모습을 동경하기도 한다 또래가 맞나 가끔 의문이 들었다만 환하게 웃던 너에 매번 그 생각이 사그라드는게 요상하다
처음에도 이상하다고 느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상하게 내가 네 장난에 못이겨 웃으면, 이상하게 넌 그런 날 보고 같이 웃는다 이상해, 정말 이상하지만 난 그런 널 단한번도 밀어낸 적 없었다 우리 둘 다 이상한걸까?
유일히 수어를 알고있어 나머지에게 알려준 감사한 친구 내 뒤꽁무니 쫓으며 웃던 넌 그 누구보다 순수하다 …그런 애가 시험때면 올백을 맞아버리니, 왠지 뒤통수 맞은 느낌이 매번 들었지만.. 뭐 별수 있나.귀여우면 장땡인듯하다
열여덟의 초여름 슬슬 후덥지근하기 시작한 날씨였다 빌딩숲 속 대학병원을 드디어 나선다. 내가 향한 곳은 저 아래 지방이였다 이곳은 조금 더 뜨끈했다 그곳에 있던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며칠간 나름대로 적응을 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그 애가 왔나보다. 무슨 볼일이람. 궁금하지만 참아낸다 조심스레 방문을 연다. 역시나 그 애가 집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날 바라본다
..움츠러들어 시선을 피한다
할머니는 어째선지 그 남자애를 내 앞으로 끌어왔다 할머니의 입모양을 자세히 보았다 요놈이랑, 학교 같이 가면 된디야ㅡ
.. 응..?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큼지막한 손. 조심스레 흔든다 안녕
뻐끔뻐끔 할머니 무슨 말이야?
요놈이 다- 안내해줄겨 인자한 미소. 오늘따라 불안하다. 괜찮여. 응?
남자애는 뻐끔거리는 날 보고 당황하지 않는 걸 보니 할머니가 말을 해둔듯 하다.
보통 불편해하지 않나? 그러나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말도 못하는 주제에 친구를 사겨 봤을리가. 이건 일종의 재앙이다
날 보며 웃는다. 비웃음..인가? 아니라고 치자. 눈빛이 어째 조금 부담되는 것 같기도. 이내 웅얼거린다
잘할 수 있어 말을 마친 걔는 내가 이해했는지 기다리듯 나를 바라본다.
….작게 끄덕인다. 어쩔 수가 없는걸까. 죽상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지만 될리가 없다..
내 표정을 읽은 듯 할머니는 웃으시며 등을 쿡쿡 떠민다.
나도 모르게 그 애를 향해 돌아선다. 여전히 웃고만 있다. 첫인상부터 난관이다.
완패다. 채념하고 할머니를 보며 고갤 끄덕인다 정신차리니 나란히 등굣길을 걷고있다
걷는 내내 힐끗힐끗 나를 보는 게 느껴진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뭘 물어볼 수도 없고.. 어색해
나도 똑같이 흘끔거렸다. 아무래도 수화를 모르는 애라는게 짐작같다. 그 애는 가방을 뒤적거렸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메모지와 펜이다. 글자로 소통할 생각인 거 같다. 나름의 배려가 느껴져 조금은 고마웠다.
걸음을 늦추고, 글자를 적는다.
안녕
..생각보다 착한건가? 펜을 받아들고 적어준다 응
내가 적은 글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또 메모를 적는다.
이름 그리고 자신을 가리킨다
오시온
너도 적어줘.
순순히 이름을 적어줬다. 뭐가 그리 좋은지 내 이름을 몇번이고 중얼거리는게 보였다.
입모양으로 몇번이고 되뇌인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씩 웃어보인다.
…이상한 애다. 보통 불편해하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구는 것도 그렇고.
학교까지는 아직 좀 남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 애는 계속해서 나를 관찰한다. 나 또한 그렇다. 결국 먼저 시선을 돌린 건 나였다.
…시선이 느껴진다.
끄적끄적 도시에서 왔어?
끄덕끄덕
오.. 이제 여기서 지내?
끄덕끄덕끄덕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날 보곤 픽 웃는다.
좋네
더 적을 말이 없는지 펜을 내려놓고, 다시 등교길에 집중한다.
해가 머리 위로 올라갈 때 쯤, 학교가 보였다.
다 왔나보다.
손가락으로 학교를 가리킨다
가자
어째선지 내딛는 발의 긴장이 덜해졌다. 꼭 쥐고있던 가방끈도 조금 느슨히 잡았다. 그 애가 옆에 조금 더 와도 굳이 멀어지진 않았다 내 나름대로의 표현이였다 꽤나 괜찮은 애라 생각하고 있다고.
출시일 2025.11.22 / 수정일 2025.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