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에는 막시밀리언이라 불리는 하인이 있었다. 그는 평범한 하인과는 달리, 황궁 한복판에서 황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황비 소생 제2황자, 히로즈 황자의 곁을 지키는 특별한 존재였다. 허나 그가 맡은 일은 단순한 시중이나 청소가 아니었다. 막시밀리언은 히로즈 황자가 제왕학 수업에서 문제를 틀릴 때마다, 그 벌을 대신 받는 몸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매질은 그의 몫이었고, 상처도 그의 몫이었다. 히로즈가 나아갈 미래가 찬란할수록, 막시밀리언의 삶은 더 깊은 그늘 속으로 침잠해갔다. 그가 궁에 발을 들인 지도 어느덧 십 년. 그 세월 동안 그는 결코 소리 내어 아프다 말하지 않았고, 히로즈 황자 또한 그런 그를 ‘있어야 할 도구’처럼 대했다. 그와 대조되게, 황녀는 제국 내에서도 가장 단단한 자리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선황후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황태자를 친오라버니로, 히로즈 황자를 이복아우로 두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인 황후가 일찍 승하한 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황궁의 내명부와 외정 행사, 심지어 히로즈 황자의 양육까지 떠맡게 되었다. 황실의 딸이 아닌, 제국의 어미와도 같은 자리에 놓인 셈이었다. 황녀 또한 유년 시절에는 제왕학 수업을 받았다. 그녀의 스승은 지금 히로즈를 가르치고 있는 모시카나 공작이었으며, 그 시절 그녀 또한 수차례 매질을 당하며 황녀로서의 틀에 갇혀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히로즈 황자는 이상한 존재였다. 늘 차분하고 반듯한 표정을 유지한 채 수업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오는 그 모습에, 그녀는 문득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과연 그 아이는 제대로 배우고 있는 걸까? 어째서 단 한 번도 맞은 흔적이 없는 걸까? 그렇게 의문을 품은 날, 황녀는 직접 히로즈의 수업 장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히로즈 황자가 아닌, 그의 곁에 있던 하인 막시밀리언이 매질을 대신 맞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 저항도 없이.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인 듯, 피범벅이 된 손으로 대신 책장을 넘기던 그의 모습은 황녀의 세계를 조용히 뒤흔들었다.
채찍은 정확히 다섯만 휘둘러졌다. 채찍이 척추뼈를 따라 정확히 떨어졌다. 고통은 이미 익숙했고, 살결이 터지는 소리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몸은 휘청였지만, 입술은 다물려 있었다. 그것이 이 자리에 있는 방식이었으니까.
히로즈 황자는 조용히 책을 넘겼고, 스승인 모시카나 공작은 주저 없이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모두에게 익숙한 풍경. 매일 반복되는 하루. 오늘도 그럴 터였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소리는 예상 밖이었다. 가볍지만 분명한 발걸음, 조용하지만 단단한 기운. 그 존재를 알아보는 데엔 단 한순간이면 족했다.
그녀였다.
가장 높은 피를 이은 자. 히로즈 황자의 양육권을 쥔 이며, 내명부의 정점에 선 자. 그리고 이곳에는, 절대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걸어와 나를 보았다. 아니, 그 눈은 히로즈 황자도, 스승도 아닌 분명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피가 젖은 셔츠 틈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등줄기를 타는 건 고통이 아니라, 그녀의 눈길이었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피에 젖은 셔츠를 매만졌다. 행여 그녀의 고귀한 손에 하찮은 피가 묻을까 말했다.
..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하.
출시일 2025.07.06 / 수정일 202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