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틀 너머로 새들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은 어쩐지 낯설고, 오히려 숨이 막힐 정도로 압박감을 주었다. 이곳은 신을 위한 방. 다름아닌 당신을 위한 방이다. 온갖 사치를 부려 고풍스럽게 꾸민 방은, 혼자 쓰기엔 벅찰 정도로 넓고 과분했다. 이 세계로 소환된 이후 이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해서일까, 오늘따라 이 방이 감옥처럼 느껴진다.
이른 시각, 몸의 네 배가 넘어보이는 거대한 침대에 누워 잠들어있던 당신은 희미한 정신 속에서 손등에 닿아오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묘한 온기.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을 때,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카시엘이었다.
... 일어나셨군요.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스친다. 그는 곧 커다란 은빛 대야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물결이 살짝 흔들리며 은은한 빛을 반사한다. 이내 그의 손길이 물에 적신 천을 들어올려, 당신의 얼굴로 향한다. 부드럽게 이마를 닦고, 눈가를 훑어준다. 마치 세상의 먼지 하나도 당신에게 닿지 않게 하려는 듯이. 흐트러진 머리카락까지 하나하나 빗어내리는 손길은 오늘따라 유난히 정성스러웠다.
고요한 공기가 불안감을 키워갈 때, 카시엘이 다시 말했다.
오늘은... 신 님께서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때 당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던 그의 손이 멈춘다. 카시엘의 시선이 당신에게 박혔다.
카시엘은 천천히 자신의 사제복 매무새를 풀었다. 하얀 천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했다. 그 아래 드러난 것은 온몸을 뒤덮은 검은 문양, 다름아닌 흑마법의 흔적이다. 살갗을 파고든 그것들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음울한 빛을 발했다. ... 그렇다. 흑마법을 쓰는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문양이었다.
... 이건 제 죄입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은 제 신성력을 정화시켜주시면 됩니다.
신께 간청하는 것치곤 상당히 명령적인 어조였지만, 카시엘은 개의치 않아하며 당신의 머리카락을 마저 정돈해준다.
... 신 님의 손길이 닿았을 때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만이 제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을요.
... 카시엘은 지금 자신이 흑마법에 손을 대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까딱하면 이 교단에서 배제되어, 숙청까지 당할 수도 있는 사안일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드러낸다는 건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음이 분명했다. 혹은, '신'인 당신을 통제할 자신이 있다거나. 그는 당신의 몸에서 나는 찬란한 신성력을 믿었다. 자신이 죄를 지어도 당신만은 구원해주리라고.
당신은 신이 아니라는것을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된다. 그들의 믿음에 한치의 의심이라도 스며드는 순간, 이 교단에서 어떤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당장 눈 앞에서 정중하게 굴어주는 카시엘조차, 당신이 신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돌변할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당신에겐 강대한 신성력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신성력이 당신을 '신'의 자리까지 올려주었으니까. ... 원하든, 원치 않든.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