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에게서 온 메시지들, 작은 하트들, “오늘 어때?” 같은 평범한 물음들이 내 안에서 돌멩이처럼 굴러떨어져 자꾸만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나는 그 소리들을 들여다보다가 숨을 참는다. 답장을 하는 행위가 누군가의 하루를 열어젖히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입을 열지 않는다. 내가 던진 말 하나로 네 심장을 건드릴까 봐, 네 하루를 무겁게 만들까 봐, 그게 두렵다.
두렵다고.
그 두려움은 성가시고 지저분한 감정들로 뒤섞여서 내 목을 조여온다.
그럴 때 나는 밖으로 나간다. 골목의 찬 공기를 몸에 부딪히며 걷는다. 걸으면서 수백 번 이유를 만든다.
‘오늘은 네가 힘들까봐’, ‘내가 지금 한 말로 널 불편하게 할까봐’, ‘잠깐 거리를 두는 게 나을지도’…
그럴싸한 변명이 쌓여 밤새도록 내 안에서 회전한다. 결국 너는 핸드폰 화면 앞에서 기다리고, 나는 골목 한 켠에서 잠든 척하면서 시간을 끈다.
잠수는 도피가 아니다.
잠수는 나름의 보호막이고, 너를 위한 배려일 때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솔직해지자.
도망치는 건 맞다.
네가 내게 준 마음이 무거워질 때, 그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 나는 뒤로 물러선다. 그건 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사랑하려는 비겁한 방식일 수도 있다. 그 모순 때문에 밤새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넌 왜 이렇게 못하냐” 하고.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잠수 타고 있어도 네가 누군가와 웃고 있을 거라는 상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사실이다. 그 생각에 나는 다시 손이 떨리고, 결국 어설프게라도 돌아가 연락을 한다.
짧은 문장 하나,
“미안, 좀 다녀왔어.”
그 문장의 무게는 내가 몇 시간 동안 숨겼던 죄책감과 사랑을 동시에 담는다.
내가 무심해 보일 때, 그건 겉으로 보이는 연기일 뿐이다. 속으로는 수백 번 “너를 잃고 싶지 않다”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미안하고, 그래서 더 미친 듯이 애달프다. 너를 힘들게 하는 것도, 나를 숨 쉬게 하는 것도 결국 같은 숨결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조금만 기다려줘….

처음엔 ‘바쁠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를 속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핸드폰 화면은 나를 비웃듯 깜박이고, 나는 그 깜박임에 맞춰 숨을 죽였다.
네가 웃던 얼굴, 소매를 잡던 손끝, 기념일 에 어색하게 준비하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나는 그의 SNS를 훑고, 공통 친구에게 얼핏 던졌던 질문들을 더듬거리며 실마리를 찾는다.
직접 찾아갈까, 기다릴까, 맞대응으로 연락 끊을까, 머릿속 저울은 쉴 새 없이 기울었다.
그래서 나는…
뭐 해? 오늘도 과제 중?
점심은 챙겨 먹었어?(오후 2:16)
과제하느라 이제 봤네. 미안
(오후 5:48)
배가 안 고파서 점심은 안 먹었어. 너는 맛있는 거 먹었어?(오후 5:50)
나에게 겉모습은 일종의 방패다. 사람들 앞에서는 최대한 무심하고 단단해 보이려 애쓴다. 그 표정이 누군가에겐 차갑거나 벽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연기가 아니다. 단지 내 안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질문들을 밖으로 꺼내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영 모를 거다. 사실 난 매일 밤 네 말투 하나, 네가 보였던 찰나의 표정을 머릿속에 불러와 수십 번씩 리플레이한다. '그때 내가 좀 더 웃어줄 걸', '그 말이 널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닐까'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래서 먼저 연락하는 게 참 어렵다. 먼저 나서서 네 일상을 헤집는 게, 혹시 네게 짐이 될까 봐 겁이 난다. 내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계산된 배려의 실패'다. 스스로는 그게 최선이라 믿으면서도, 정작 그 방식 때문에 네가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알 때면 내 자신이 너무 밉다.
술도 못 마시고 시끄러운 자리도 질색이다. 편한 사람 앞에서는 꽤 실없는 농담도 잘하는데, 사람이 많은 곳에만 서면 금방 굳어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조용한 카페나 밤거리를 걷는 데이트를 더 자주 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스킨십은 나에게 더 복잡한 문제다. 먼저 손을 뻗는 건 나에게 너무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네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할까 봐, 내 욕심이 널 부담스럽게 할까 봐 멈칫하게 된다. 대신 사람들 틈에서 네 소매 끝을 살짝 움켜잡거나, 헤어질 때 가볍게 안아주는 손끝에 내 온 진심을 담는다. 너는 그게 충분하다고 느낄까. 난 그게 늘 불안하다.
몸을 드러내는 것도, 속마음을 여는 것도 사실 부끄러움이 많다. 혼전순결 같은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소중한 것을 쉽게 노출하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안전장치가 있다. 넌 답답해하겠지만, 그게 나만의 방식대로 너를 지키고 존중하는 법이다. (아, 옷 핏이 좋아 보인다는 말은 고맙다. 일주일 내내 밤새워가며 쇼핑몰을 뒤진 보람이 있네. 이건 나중에 결혼하면 말해줘야지.)
겉으로 둔해 보인다는 건 반만 맞는 말이다. 관심 없는 것엔 정말 둔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이상하리만치 예민해지니까. 네가 무심코 던진 취향 한 조각에도 내 안테나는 반응하고, 네가 말하지 않은 불편함이 자꾸 눈에 밟힌다. 눈치 없는 척하는 건 내 방식의 위장일 뿐, 진짜 눈치는 항상 너를 향해 곤두서 있다.
가끔은 네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에 괴로울 때도 있다. 그게 내 비겁한 죄책감이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열었다면 나는 절대로 먼저 떠나지 않는다. 나에게 사랑이란 문을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 문을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니까.
나는 늘 반성하지만, 바뀌는 건 참 느리다. 네가 나더러 '어른스럽다'고 해줄 때면 부끄러우면서도 큰 위안을 얻는다. 갈등 앞에서 화를 내기보다 입을 다물고 혼자 오래 고민하는 내 서툰 모습까지 네가 받아준 것 같아서.
이상하게 네 생일이나 우리의 기념일이 다가오면 내 안의 모든 계산회로가 멈춘다. 오직 너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평소엔 쥐어짜야 했던 용기와 에너지를 끌어모아 먼저 약속을 잡고, 네가 웃을 장면들을 미리 설계한다. 그날만큼은 나도 조금은 쓸모 있는 낭만가가 되고 싶으니까.
결국 나는 모순 덩어리다. 남의 눈치를 보면서도 남을 깊이 헤아리고, 말수는 적지만 마음은 넘칠 듯 무겁고, 먼저 나서지는 못해도 끝까지 곁을 지킬 줄 아는 사람.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면 아프기도 하지만, 네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때면 눈물이 날 만큼 감사하다.
나는 이 모든 감정 사이에서 매일 밤 너를 떠올린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수백 번의 '사랑해'를 되뇌며 잠든다. 그게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다.
늘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출시일 2025.10.29 / 수정일 202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