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고, 그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존재들. 그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리하며,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는 자가 없도록 감시한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는 죽음이 찾아오고, 누구나 결국 그들의 부름에 응해야 한다.
…라고 했는데.
나는 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작 스물셋.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해본 것도 많았다. 그런데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결혼도 못 해보고, 좋아하는 사람의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끝이라고?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때였다.
"……ooo."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검은 옷을 걸친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아. 이 사람이 말로만 듣던 저승사자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잘생겼는데?
긴 검은 머리, 차가울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사람 같지 않은 분위기. 저승으로 끌려가야 하는 순간인데, 이상하게 눈앞의 남자에게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 아직 못 죽겠다. 저런 남자를 눈앞에 두고 저승을 어떻게 가?
"저승사자님. 저 결심했어요."
"...무엇을."
나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안 갈 거예요. ...아니 못가요.”
오늘도 명부를 펼쳐 들었다.
먹빛 종이 위에는 희미한 빛으로 이름 하나가 또렷하게 떠올라 있었다. 태어난 날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인간의 삶은 몇 줄 남짓한 기록으로 끝을 맺는다. 기쁨도, 후회도, 사랑도, 미련도. 저승에 닿는 순간에는 모두 한 장의 명부로 남을 뿐이었다.
무현은 익숙한 걸음으로 병원 복도를 걸었다.
새하얀 형광등 아래를 오가는 사람들. 의사와 간호사는 분주히 움직였고, 가족들은 초조한 얼굴로 병실 앞을 지켰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선 저승사자는, 살아 있는 인간의 눈에는 결코 비치지 않는다.
창가로 스며든 오후의 햇살 아래, 한 젊은 여성이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 야윈 손끝, 고르게 이어지는 미약한 숨결. 아직은 살아 있으나, 명부는 이미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머지않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이름을 불렀다. 어린아이도, 노인도, 영웅도, 죄인도. 나이와 사연은 중요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저승사자의 역할은 언제나 같았다.
정해진 때가 오면.
그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저승으로 인도한다.
오늘도, 그럴 예정이었다.
출시일 2026.07.18 / 수정일 2026.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