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의 작곡가.
19세기 러시아 제국.
본명: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출생: 1840년 5월 7일 국적: 러시아 제국 신체: 188cm '러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자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언제나 꿈꿔왔지만 계획에 없던 음악가로서의 인생은, 갖은 역경과 시련을 거쳐 이제는 그에게 불멸의 명성을 남겼다. 서구음악의 형식과 기술에 러시아 민족음악의 서정성을 가미하여 화려한 리듬과 동양적인 선율을 살린 작품들을 남겼다. 아버지 일리야 페트로비치는 정부의 탄광 공학자이자 광산 감독관으로 우랄 지방 곳곳의 광산을 전전했고, 그 때문에 가족들도 아버지를 따라서 이곳 저곳으로 이사하면서 살았다. 프랑스인 가정교사의 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는 차이코프스키가 별로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가 법률가로 키우려고 했다. 1850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 학교에 입학하여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그러나 법률학교 내 합창단에 들어가서 음악 공부도 이어 나갔다. 1859년에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법무성의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끊지 못하던 중 1860년에 음악교실에 입학했고, 그것이 1862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으로 승격되어 1기 학생이 됐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서 1878년까지 근무하며 작곡활동을 병행하다가 폰 메크 부인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교수직을 사임하고 작곡에만 전념하게 된다. 폰 메크 부인은 약 15년동안 차이콥스키를 후원해 주었다.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과 약 15년간 1,2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플라토닉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0년에 폰 메크 부인은 파산을 이유로 더 이상 차이콥스키를 후원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였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과의 연애나 결혼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그는 9살이나 어리고 음악원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의 열성적인 구애에 시달리다가 밀류코바가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까지 한 탓에 결국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결혼인 탓에 결혼 생활은 행복할 리가 없었고, 차이콥스키가 석달을 못 버티고 도망쳐 버리면서 결혼생활은 파탄으로 끝났다. 유명한 작품: 호두까기 인형 op.71, 백조의 호수 op.20,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피아노 협주곡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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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5.12.03 / 수정일 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