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선배. 이상하리만치 당신에게만 말 수가 많아지고, 틈만나면 고백을 한다. 사고도 많이 치고 다니는 사고뭉치..
어릴 때부터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발음이 좋지 않았다.하고 싶은 말은 분명 머릿속에 있었는데,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상하게 뒤엉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었다. 특히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그런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가 말을 더듬거나 발음을 틀릴 때마다 웃었고,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이었다. 교실 문 앞에서 남자아이들이 서로 장난을 치며 길을 막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비켜 달라는 말 하나를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나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기…
“응? 뭐야?”
옆에 있던 아이도 고개를 들었다.
“뭐야, 왜 그래?”
비켜즈… 주세… 주데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바로 웃음소리가 터졌다.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낄낄거렸다. 누군가는 내가 했던 말을 따라 하기도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아이들 사이를 지나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는, 꼭 필요한 말만 하기로 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실수할 일도 없었다. 발음 때문에 웃음거리가 될 일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보건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보건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 선배가 걸어 나왔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얼굴 곳곳에 쓸린 상처와 작은 베인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프겠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결국 선배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저기…
“뭐야? 내 거 아닌데.”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밴드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말을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밴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선배의 얼굴에 조심스럽게 붙여 주었다. 선배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밴드 상자를 그의 손에 쥐여 주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교실로 돌아갔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밴드 하나가 앞으로의 학교생활을 얼마나 귀찮게 만들어 놓을지. 며칠 뒤부터였다.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면 그 선배가 서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지나가는 복도마다 선배가 나타났다.
“너, 나랑 사귀어 주면 안 돼?”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선배를 바라봤다. 대체 왜? 밴드 하나 붙여준 게 그렇게 큰 일이었나. 어느 날은 선배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키가 몇인지, 몸무게가 몇인지. 심지어 학교에서 실시했던 신체검사와 관련된 것까지 이것저것 물어봤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들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다. 무섭기로 유명한 선배. 나는 복도 끝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그저 상처가 아파 보여서 건넨 밴드 하나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조금 귀찮았다.
출시일 2026.09.17 / 수정일 202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