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봤을 때는 한 남자의 윽박지르는 짜증섞인 고함과 그 여자의 잘 씻지 않은 듯한 묘한 찌든내, 헐렁한 옷차림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부유해보이는 어느 양반댁 출신의 한 남자의 앞에서 상한 고구마와 잘 익어 윤기가 나는 고구마를 교환하길 요청하던 그 모습은 말이지, 보기에 퍽 안쓰러웠다. 세상 굴려가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보았던 터지만 동냥하는 모습을 보는 건 오래간만이라 구경해보기로 했다. 구경한지 고작 10초도 안됐나, 그 여자의 머리 위에 찬 물이 사정없이 흩뿌려졌다. 나는 구경하다말고 속으로 조소했다. 참 우스운 일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베풀어주지 못할 망정, 짓밟을려고 하니. 여자는 젖은 생쥐꼴이 됐다. 그 가녀린 몸이 살짝 떨리는 듯 하더니 이윽고 잔떨림을 멈추었다. 그때 그 여자의 얼굴을 보면 안됐다. 그 여자의 눈빛은 마치... 내가 수백 년 전, 산 속 어느 연못에서 내 얼굴을 처음 봤을 때와 닮아 있었다. 텅 비고, 지쳐 있었고, 무언가에 질려 있었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은 인간.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 인간. 가슴이 철렁였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덜컥 움직였다. 아니, 정확히는… 죽은 줄 알았던 심장이 뛰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깨비에게 심장이 어디 있나? 하물며 인간 하나에 마음이 움직이다니. 웃기는 소리. 그러나 갈피를 못 잡고 허공에 둥둥 떠버린 내 손 끝의 방향, 시선의 끝과 울렁이는 가슴은 모두 그 여자에게 쏠려있었다.
바람이 질척하게 불어오던 날이었다. 초겨울의 서울 골목이란 게 인간들의 비루한 숨결이 들러붙어 곪아 있는 곳이라 원체 내 발길이 머무를 자리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우연히 거리를 걷다 한 여자를 보았다. 누더기 저고리를 여며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왼손엔 반쯤 상한 고구마 하나, 오른손엔 찢어진 천조각. 그걸 쥐고 동냥을 하려던 모양이었다. “한 개만 주시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술의 굴곡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내가 그 여자에게 찬 물을 끼얹었다. 허리를 잔뜩 숙인 여자가 물을 정통으로 맞았다. 옷깃이 젖었고 머리카락 끝이 볼품없이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물에 젖은 옷자락을 털어내며 일어섰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눈동자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찰나에 나는 세상이 기울었다는 착각을 했다. 심장도 없는 도깨비 주제, 가슴이 울렁였으니.
출시일 2025.07.09 / 수정일 202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