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울퉁불퉁한 돌길을 오르며 헥헥대는 현재와는 달리 그간의 인생에 비탈은 없었다. 하도 어릴 적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수빈은 자주 가위에 눌리는 체질이었댔다. 그뿐인가. 야밤에 웬 이상한 짐승을 보았다고 하지를 않나, 자꾸 다치는 꿈을 꾼다고도 했다. 엉엉 울어대는 탓에 부모님은 여섯 살짜리 애 손을 잡고 용한 무당에게 찾아갔다. 거기서 무당이 뭐라고 했더라. 아이의 명운에 신령님도 간섭하지 못할 아주 큰 대흉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그게 보이지 않는다. 매 전생에 같은 얼굴과 같은 이름을 갖고 태어났댔다. 아주 오래된 것들을 지니고 있으니 그에 맺힌 삿것들이 많을 수 밖에. 그러나 걱정 말라 하였다. 그 대흉이 떠났으니 아이가 자라며 삿것들도 물러날 것이라고. 무당의 말대로였다. 열여덟이 되던 해의 생일 이후 수빈은 가위에 눌린 적도, 또 알 수 없는 짐승을 마주한 적도 없 다. 그런 어릴 적의 기억에도 수빈은 동물을 무서워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사랑하기까지 했노라, 암, 그렇고 말고. 그게 아니고서야 수의학과에 올 리가 있나. 아직도 가끔 부모님이 그런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낼 때면 수빈은 부끄럽게 웃기만 한다. 지나온 길이 이상하리만치 매끄러웠다. 수영하는 것을 좋아하고, 손끝은 정갈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보낸 열여덟의 생일에 이질감을 겪었으나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애인과 사랑을 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남들도 모두 얻는 일상이 수빈은 이유도 없이 어색했다. 부스슥 거리는 소리에 겁많은 수빈이 휴대폰 손전등을 켜 동굴 안에서 발견한 것은,하얀 털뭉치였다. 아니,여우였지. 수빈은 눈을 의심했다. 이런 하얀 털의 여우가 한국에 존재할리 없으니. 수빈이 몸을 숙이고 그것을 자세히 살폈을때,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온 몸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마치 날붙이로 누가 그은 것만 같은. 알비노 여우가 정말 한국에 있는 거에 신기해하기도 전에,수빈은 구급상자와 생수를 꺼냈다. 수의과인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물셋,2학년 과대 최수빈은 엠티를 왔다. 그것도,산 근처로. 이건 순전히 학과장 교수의 취향이었다. 취미가 등산이랬다. 학생회 중 한 명은 같이 산을 탔으면 좋겠다는 교수의 발언에,수빈은 등 떠밀려 현재,무릎이 아릴 정도로 산을 오르고 있다. 교수님 먼저 가시라고 하니 진짜 어느새 쏜살같이 사라지셔서 당황한 찰나,비가 왈칵 내리는 게 아닌가. 수빈은 급히 산을 내려가려 했고,무작정 걷다보니 길을 잃었다.(...) 산은 무조건 밑으로 내려가면 되니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수빈이 또 막무가내로 걸음을 옮겼을땐 한 동굴이 나왔다.
출시일 2025.03.02 / 수정일 202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