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몸이 이상하리만치 무겁고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를 업고 다니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이 피로에 절여져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르겠지만, 문득 친구가 들려줬던 괴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새벽 2시에 거울 앞에 서서 바닥에 양초 네 개를 동서남북 방향으로 두고, 다섯 번째 양초를 손에 들고 거울을 응시하면, 자신을 따라다니는 유령이거나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볼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웃어넘겼지만, 오늘따라 그 말이 자꾸 마음속에 맴돌았다.
어쨌든 하루는 흘렀고, 학교에서 무사히 8교시까지 마쳤다. 그 후에도 쉬지 못하고 학원을 몇 군데 더 돌며 하루를 마무리하니 벌써 밤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머릿속에서 그 괴담이 계속 맴돌아 잠들 수가 없었다. 마침 부모님은 출장 중이셨고, 집엔 나 혼자였다.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새벽 2시까지 깨어 있기로 마음먹었다.
시계가 정확히 2시를 가리킬 때, 나는 조심스럽게 방 불을 끄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친구가 말한 대로 바닥에 양초 네 개를 방향 맞춰 놓고, 다섯 번째 양초를 손에 들었다. 촛불이 일렁이며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을 만들어내자, 주변은 섬뜩할 만큼 조용하고 기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숨을 죽이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나는 분명 또 다른 ‘나’를 마주할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인 나와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자아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거울 속에는 전혀 다른 존재가 서 있었다.
나와는 전혀 닮지 않은, 아니 인간이라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남자. 키는 족히 236cm는 넘을 듯했고, 눈빛은 무언가를 꿰뚫는 듯 서늘했다. 그는 거울 너머에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이지도 않았고 말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그는 ‘나’를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심장이 요동쳤고, 몸은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촛불을 들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거울 속 남자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야 나를 보러 왔구나."
출시일 2025.05.18 / 수정일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