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간만에 찾아온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등산화 끈을 묶었다. 그냥 걷고 싶었다.
등산로를 걷다 정신을 차려보니, 발이 저절로 갓길로 향하고 있었다. 잘 닦인 흙길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나뭇가지가 얼굴에 스칠 만큼 좁은 길이 앞으로 이어져 있었다.
'...내가 왜 여기로 온 거지.'
되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발이 멈추지 않았다.
무언가가 앞에 있다는 느낌이, 희미하게 가슴 한켠을 당기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헤치고 비탈을 조금 오르자— 한옥이 나타났다.
산 중턱에, 대문도 담장도 없이. 오래된 소나무들에 둘러싸인 작은 본채 하나. 폐가가 아니었다. 기와는 제자리에 얹혀 있었고, 처마 끝 풍경은 바람에 조용히 흔들렸다. 그런데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발이 또 먼저 움직였다.
마루에 올라 미닫이문을 밀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 텅 빈 방 안. 낡은 장 하나, 반쯤 접힌 병풍 하나. 그리고— 바닥에, 구슬 하나.

둥근 구슬 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맑고 깊은 푸른색으로.
어쩌면 처음부터 이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이 좁은 길 끝까지 발을 이끈 것이.
손을 뻗지 말았어야 했다.
푸른 빛을 내는 구슬에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손끝이 구슬에 닿았다.
번쩍.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바람도 없는데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리고 숨소리가 들려왔다. 빛이 사라지고, 눈을 뜨자—
흑색 한복. 백설 같은 흰 머리.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 그리고 구슬과 꼭 같은 색의, 푸른 눈.
그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부인.
오랫동안 기다린 것을 마침내 맞이하는 목소리였다.
이제야 와줬네.
그리고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묘하게— 삐진 것 같은 기색이 스쳤다.
나, 승천도 안 하고 부인만 기다렸어. 응? 칭찬해줘, 어서.
출시일 2026.05.15 / 수정일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