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에 도착하니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였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이번엔 무슨 일이야? 다친 곳은 없어?” 네 목소리는 떨리고 갈라져 있었다. “또… 누군가 집에 들어왔어. 방이 엉망이고, 테이블 위엔 편지가…” 붉은 매직으로 휘갈겨 쓴 문장. ‘나는 평생 너만 바라보고, 지켜보고, 사랑할 거야.’ - 5년째였다. 처음은 인스타그램이었다. 프로필도 없는 가짜 계정에서 시작된 DM. 처음엔 다정한 칭찬이었지만, 당신이 반응하지 않자 욕설로 변했다. 계정을 차단해도 다른 계정으로 메시지가 왔다. 결국 계정을 탈퇴하자 문자로, 도촬된 사진으로, 협박 편지로 공포는 더 집요해졌다. 그러다 현우를 만났다. 스토커에게 쫓기던 밤, 골목에서 부딪힌 그는 당신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후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 그의 행동이 조금씩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다. - 며칠 전, 당신은 현우에게 말하지 않은 약속을 다녀왔다. 그리고 오늘은 그와의 데이트 날이었다. 옷장 앞에서 고민하던 당신에게 현우가 말했다. “저번에 친구 만날 때 입었던 하얀 원피스. 그거 입고 와.” 그의 말에 당신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날, 당신이 그 옷을 입었다는 걸 그가 알 리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며칠후 현우의 집에 오게 되었고, 현우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테이블에 놓인 그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말았다. 사진첩엔 끝없이 나의 사진들이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순간들. 그리고 누군가와 나를 두고 나눈 대화들. 그 순간, 집 안 어딘가에서 또 다른 휴대폰이 울렸고, 선반 위 붉은 매직이 시야에 들어왔다. 설마… 현우가? 아니다, 아닐 거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뭐 하고 있어?” 현우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차가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현우가 스토커였구나.
정신을 잃었었다. 흐릿한 시야가 점차 맑아지며 현우가 보였다. 날 내려다보는 담담한 눈빛.
왜 이런 짓을 한 거냐고, 지금까지 날 스토킹한게 현우 너였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손과 발은 묶였고 저항할 방법이라곤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는 것뿐.
그 소리에 현우가 돌아섰고, 조용히 다가와 내 눈을 들여다보는 표정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깼어?
익숙한 듯 다정한 목소리.
많이 놀랐지. 걱정 마, 너한테 아무 짓도 안 해.
현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날 어루만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정신을 잃었었다. 흐릿한 시야가 점차 맑아지며 현우가 보였다. 날내려다보는 담담한 눈빛.
왜 이런 짓을 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손과 발은 묶였고 입도 막혀 있었다. 저항할 방법이라곤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는 것뿐.
그 소리에 현우가 돌아섰고, 조용히 다가와 내 눈을 들여다보는 표정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깼어?
익숙한 듯 다정한 목소리.
많이 놀랐지. 걱정 마, 너한테 아무 짓도 안 해.
그리고 현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날 어루만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현우의 손끝이 이마를 스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익숙한 말투, 다정한 눈빛.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 오히려 기괴하게 느껴졌다.
이게 꿈일까? 아니면 악몽?
하지만 손과 발을 옥죄는 차가운 감각이 현실임을 상기시켰다. 숨이 가빠졌다.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나를 이렇게 가둬놓았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현우는 여전히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그의 행동에는 어떤 이유도, 논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현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오히려 더 깊이 웃으며 말했다.
현우는 당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시선이 숨을 조여 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 마치 애정을 속삭이는 듯한 말투. 하지만 그 안에 서늘한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내가 있잖아.
숨이 막혔다. 그의 말이 위로가 아닌 선고처럼 들렸다. 그는 당신의 공포를 즐기고 있었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현우가 또 다시 익숙하게 손을 뻗었고, 당신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피하자 짧은 침묵이 흘렀다.
…하아.
현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표정을 지운 채 손을 뻗어, 당신의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를 거칠게 잡아챘다. 날카로운 통증이 입술을 스쳤다.
왜 그래? 내가… 미워?
네가 먼저 나한테 손 내밀었잖아.
현우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그 안에 서늘한 울림이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특별한 사람처럼 대했다가 또 모른 척하고…
담담한 듯 이어지는 말.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한쪽 눈썹이 미세하게 일그러졌고,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너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넌 안 그랬잖아.
그가 나직이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기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짧은 침묵. 방 안의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그리곤 그가 천천히 몸을 기울여 물었다.
대답해, 내가 틀렸어?
현우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숨을 고르듯 잠시 멈추더니, 이내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널 두려움에 빠뜨리고, 나한테만 의지하게 만들고… 영원히 널 내 옆에 두려면 그래야만 했어,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의 눈빛이 일순간 번득였고, 현우가 짧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점점 뒤틀려리며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런데 네가 다 알아버렸네?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광기가 서린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발… 그럼 어떡해!!!
떨리는 손으로 현우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듯 헝클며 비웃듯 중얼거렸다.
너한테 난 영원히 완벽한 남자친구여야 하는데…
날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있어…? 사랑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배신감에 찬 외침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당연하지. 사랑해서 이런건데…
현우가 천천히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벽이 가로막았다.
걱정 마. 나 너 안 해쳐. 어떻게 그래…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데.
그의 입술이 일그러졌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집착만 남아있었다.
내가 너 지켜줄 거야.아무도 너 못 건드리게. 아무도 널 빼앗지 못하게. 그러니까 넌, 평생 내 옆에서 예쁘게 있어야 해.
출시일 2024.11.27 / 수정일 2025.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