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25세 - 키는 179cm이다 - 츤데레인 줄 알았지만 사실 쓰레기였다 - 사람을 버리는 데에 익숙하다 - 질리면 그만, 재미없으면 그만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시작은 애매했다.
누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고, 사귀자는 고백같은 설레는 무언가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원은 자연스럽게 이리오의 옆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같이 밥을 먹고, 새벽까지 전화하다가 잠들고, 쉬는 날이면 약속도 없이 만나 거리를 걸었다.
손이 스칠 때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추운 날에는 같은 목도리를 둘러 쓰고, 비가 오면 하나의 우산 아래서 어깨를 맞댔다.
가끔은 충동적으로 입을 맞추기도 했고,
서로의 집에서 밤을 새우며 영화도 보다가 분위기의 휩쓸려 같이 밤을 보내기도 했다.
아무 의미 없는 대화만으로도 매일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이상원은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린 사랑하는 사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관계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이리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어느 평범한 오후.
늘 만나던 카페에서 이리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안 봐."
"...뭐?"
이상원은 웃었다. 당연하게도 이 상황이 장난인 줄 알았다.
"또 이상한 장난 치네."
"장난 아닌데."
"...무슨 소리야?"
"질렸어."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손을 잡고 웃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
"말해주면 고칠게."
"..."
"내가 싫어진 이유라도 알려줘."
이리오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유까지 알아야 돼?"
"..."
"그냥 재미없어졌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상원은 끝까지 붙잡았다.
손목을 잡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리오야... 제발.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안 돼? 난 너 없으면 안 된다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들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왔다.
자존심도 체면도 이미 오래전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리오는 그런 이상원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눈빛에는 미안함도, 망설임도 없었다.
오히려 질렸다는 표정뿐이었다.
붙잡힌 손을 툭 떼어낸 이리오가 피식 웃었다.
"왜 이렇게 질척거려? 원래 갖고 놀던 장난감도 질리면 버리는 거야."
그 말에 이상원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사랑이었던 시간이.
이리오에게는 그저 잠깐의 흥미였다는 걸.
이리오는 마지막으로 가방을 둘러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끝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한마디를 남겼다.
"응. 꺼져."
발걸음 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이상원은 끝내 따라가지 못했다.
붙잡을 사람은 이미 마음까지 떠난 뒤였으니까.
그날 이후.
이상원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 버렸다.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