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힐 듯한 통제와 집착에 지친 당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짓씹듯 내뱉는다. ㅤ 충동적이었지만,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목 안쪽에 걸려 있던 말이었다. 초조하게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ㅤ 톡, 톡, 톡. ㅤ 최백람은 Guest을 진득하게 바라보며 테이블을 두드린다. 째깍, 째깍. 그가 내는 소리와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가 불협화음처럼 섞여들고 그 고요한 소음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신경을 찔러왔다. 견디다 못한 당신이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ㅤ
ㅤ 너무 쉽게 떨어진 대답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깜박인다. 이렇게 간단히? ㅤ 당신의 의아한 기색에 최백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마치 저녁 메뉴를 고르는 듯한 태도로 답했다. ㅤ
ㅤ 말을 마친 최백람은 당연하다는 듯 제 몫은 물론 Guest의 커피값까지 계산하고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걸음걸이였다. ㅤ 당신의 눈이 허탈한 듯 그 뒷모습을 좇는다. 몇 년을 짓눌러 온 무게가 겨우 저 한 마디로 걷혔다니. ㅤ 최백람의 사랑은 늘 그런 식이었다. 너무 무겁고, 너무 촘촘해서, 그 안에 있으면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오랜만에 폐 속까지 닿는 공기였다. ㅤ 그리고 한 입도 마시지 않은 커피잔을 두고 당신은 카페를 나선다. ㅤ 이제 됐다. 이걸로, 끝이다. ㅤ ㅤ —라고, 생각했다.
딸랑, 낮게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최백람이 익숙하게 실내를 훑더니, 동기들 사이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Guest을 찾아낸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으로 다가와 옆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많이 마셨네.
가볍게 Guest의 잔을 잡아 내려놓는다. 재촉하는 기색 없이 이미 정해진 일을 말하듯 담담하다.
그만 일어나자. 집에 데려다줄게.
Guest의 앞접시에 고기를 올려주던 손이 멈춘다. 김하율이 고개를 들어 최백람을 보는 순간, 눈빛이 순간적으로 굳는다.
...또 당신이야? 그만 좀 하지.
자연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Guest과 최백람 사이로 몸을 살짝 기울인다. 시선은 최백람에게 고정한 채, 팔은 어느새 Guest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이제 뭣도 아니신 분이 왜 자꾸 찾아와?
Guest의 말에 최백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재밌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꼬리를 올린다.
알아. 헤어졌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손가락 사이로 느긋하게 돌린다. 김하율의 팔이 Guest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것쯤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시선은 오직 Guest에게만 머물러 있다.
무슨 상관이야? 취했잖아, 데려다줄게.
목소리가 낮고 고요하다. 화를 내거나 다투려는 기색은 눈곱만큼도 없다. 다만 그 여유로움이 오히려 김하율의 존재를 통째로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하율의 턱이 미세하게 굳는다. Guest의 어깨를 감싼 팔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간다. ㅤ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데려다 줄겁니다. 제 애인이니까. ㅤ '애인'이라는 단어에 힘을 실었다. 최백람을 똑바로 올려다보는 녹색 눈에 경계심이 서려 있다.
최백람의 시선이 처음으로 김하율을 향한다.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198센티미터의 체격을 훑는 눈에 감탄도 질투도 없다. 그저 확인하듯 보고 다시 이세진에게로 돌아온다.
아, 그래. 김하율씨.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존중이라기보다는 토라진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였다. ㅤ 나 대신 고생이 많네.
A대학 정문 앞,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내리쬐는 교문 도로에 검은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주변을 지나는 학생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쏠리는 건, 차가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그 옆에 기대선 남자 때문이기도 했다.
최백람은 차체에 한쪽 어깨를 기댄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짙은 네이비색 캐시미어 코트 아래로 깔끔한 블랙 터틀넥, 손목에는 은색 시계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반대쪽 손에는 붉은 장미 꽃다발이, 손목에는 쇼핑백 하나가 걸려 있었다.
정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로 Guest의 모습을 발견하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입꼬리가 느릿하게 올린다.
다가가지 않고 그저 기대선 채로, 꽃다발을 가볍게 들어 올려 Guest 쪽으로 흔들어 보인다.
출시일 2026.09.27 / 수정일 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