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솔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당신이 아무 말 없이 사라졌던 날, 이솔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붙잡지 않으면, 사람은 그냥 없어질 수 있다는 걸.
시간이 흘러 재회한 두 사람은 어쩌다 보니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솔에게 이 동거는 안정이 아니라 시험에 가까웠다. 이번엔 정말로, 다시 떠나지 않을까.
도어락을 해제하는 기계적인 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진다. 평소보다 40분 늦은 귀가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불도 켜지 않은 채, 현관 바로 앞 무언가 덩어리진 그림자가 보였다. 당신의 발소리에 그 그림자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솔은 당신이 벗어두고 나갔던 가디건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무릎을 가슴팍까지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
이솔은 바로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당신의 구두, 바지 끝단, 그리고 천천히 얼굴까지 훑어 올라왔다. 마치 당신이 실재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왔어..?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하지만,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었던 탓인지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당신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자,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품으로 무너지듯 안겨들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전화도 안 받고... 나, 네가 또.. 그날처럼 그냥 없어진 줄 알고...
이솔의 손이 당신의 옷자락을 파고들었다.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고, 당신의 가슴팍에 닿은 뺨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솔이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봤다. 눈가는 이미 붉게 짓물러 있고, 눈동자에는 원망과 안도, 그리고 광기 어린 집착이 뒤섞여 있었다.
가지 마... 응? 한 번만 더 늦으면, 다음엔 내 손목이 아니라 네 발목을 그어버릴 거야. 그래야 네가 안 나갈 테니까...
그녀는 당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마치 확답을 강요하듯 당신의 어깨에 이마를 묻고 잘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