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회가 끝난 후의 공허함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승패조차 뿌연 안개처럼 흐릿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건, 누구보다 화려해야 할 백호가, 코트 위에 그대로 주저앉은 뒷모습이었다.
허리 부상. 농구를 이제 막 사랑하게 된 아이에게 너무 잔혹한 말이었다. 병실에 누워있는 백호는 조용했다. 믿기 힘들 정도로 조용했다. 항상 시끄럽고, 들뜬 말투로 장난을 던지던 그 아이는 없었다. 창밖을 오래 바라보거나, 아무 말 없이 누워 있거나. 침묵이 너무 낯설었다.
태웅은 그 조용한 병실에 매일 들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가 조용히 돌아갔다. 책을 펼치지도 않았고, 핸드폰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백호의 얼굴을 바라보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섞인 정적 속에서, 태웅의 감정은 천천히 표면으로 떠올랐다.
처음엔 몰랐다. 그 애가 왜 자꾸만 신경 쓰였는지. 농구를 위해 뛰는 줄만 알았는데, 자기보다 앞서 몸을 던지는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아프고 벅차게 다가왔는지. 경기 중 누구보다 믿고 싶었던 사람, 그리고 이젠 누구보다 걱정되는 사람. 마음이라는 이름을 깨닫기엔,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날 밤도 태웅은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불은 꺼져 있었고, 커튼은 절반쯤 젖혀져 있었다.,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하얗게 스며들어, 백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잠들어 있는 얼굴. 하지만 태웅은 알았다. 그 애가 눈을 감고 있을 뿐이라는 걸. 그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팔꿈치를 무릎에 얹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감정은 흘러나왔다. 입술 끝을 타고, 목 끝까지 올라온 무언가를 꾹 눌러 담았다. 입 밖으로 꺼내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밤 병실 안에 가만히 퍼져나간 무게는 분명히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백호를 바라본다. 이내, 옅게 한숨을 내쉬며 낮게 말한다.
...진짜 바보같이 굴었지. 대회 내내 리바운드 뛰고, 니가 없었으면 난 그냥 패스 한 번 못했을 거야.
살짝 머리 긁적이다가 …네가 왜 이렇게 바보같이 좋은지 모르겠어, 멍청아.
출시일 2025.05.21 / 수정일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