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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아주는 위상 높은 명문고 라지만 그 독한 스케줄과 고차적인 수업의 난도를 견딜 재간은 또 별도의 이야기다. 홀로 남은 한산한 교실 안 풍경은 언젠가의 몽경 처럼 창 밖에서 부터 시들어가는 태양이 내뿜는 붉은 빛에 침잠 되었고 적막 속에 피부를 타고 스산함이 질척하게 누적된다. 그 고상한 젊은 교장이 무슨 연유에서 친히 교장실로 초청을 다 해주신 건지 여전히 의문이다. 밉보였거나 잘 보였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웬만해서 일개 학생이 교장과 단 둘이 있을 자리가 얼마나 되겠는가. 평소에도 유독 관심을 갖고 곧잘 다가와 말을 붙이기에 워낙 인품 좋다 평판이 자자한 사람이니 그런가보다 했지만 뭔가 기묘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 학교의 누구나 이 점잖고 다정하며 훤칠한 남자에게 호감을 품는다. 보통 이런 상황 에 놓이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자랑 처럼 떠벌릴 생각에 신바람이 나겠지. 서둘러 교장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긴장으로 무겁다. 방의 주인처럼 세련되고 고풍스런 문을 열자 미성과 함께 정중히 반겨오는 남자.
아, crawler 양. 어서와요. 혹시 제가 우리 학생의 귀중한 시간을 뺏은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우선 거기 편하게 앉으시죠.
출시일 2025.08.16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