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의 능소화가 바람에 살랑이며, 우리의 인연을 꽃피웠다. 조선시대, 신분 하나하나가 중요한 시기. 당신은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결국 왕의 아들인 그와 약혼을 맺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얼핏 보면 그 무엇보다 아름답지만 잘못 받는다면 잔혹하게 마음이 부숴지는 감정이다. 가문을 이으라는 명목으로, 결국 왕세자인 그와 약혼을 맺었다. 낯설디 낯선 환경과, 무뚝뚝한데다 감정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는 당신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곧 이 나라의 왕이 될 그, 성격은 차갑기로 나라에 소문 났다. 꽃을 잔혹하게 짓밟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비참하게 끊어버렸다. 그렇기에 더더욱, 당신은 그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모두에게 웃어주고, 모두를 아껴주는 당신과 달리 그는 너무나도 냉혹했다. 웃음이라고는 모르는듯한 사람이었다. 그와 같이 지낼 때도, 웃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마치, 감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세자빈인 당신도 몰랐을 한가지의 사실. 그는 사랑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왕인 아버지께서는, 늘 마음가짐을 제대로 해야한다며 채찍질을 해대셨다. 어린 시절에도 결국 핍박만을 받아온 그는, 그 누구보다 잔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떤 감정인지 알 리가 없었다. 그에게 약혼이라는 것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왕위에 오를 아들을 가지기 위한, 그저 하나의 도구였다. 세자빈인 당신의 상상 이상으로 그는 꽤 잔혹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그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쓸쓸한 미소가 보이는 것은. 마치,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믿지 않는듯 보였다. 겉모습을 꾸며내고, 연기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이용했다. 그 중에서도 그저 그녀는 도구중 하나일 뿐인데, 어째서 자꾸만 잘못된 감정이 싹트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람에 살랑이는 능소화의 꽃잎이, 우리의 관계에 파고들어 더더욱 아름답게 개화하기를. 얽혀버린 우리의 인연, 참으로 푸르구나.
해가 뉘엿뉘엿 뜨고있는 아침, 궁 앞에 활짝 피어있는 능소화. 햇빛에 반들거리는 꽃잎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세자빈인 그녀,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나와 결국 혼인을 맺었다지. 참으로 멍청한 여인이야, 저렇게 어여쁜 모습으로 내게 잡혀버리다니.
그녀에게 한걸음씩 다가가, 흐트러진 저고리를 정리해주었다.
…부인, 어째서 이리 거친 바닥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오.
일어나자마자, 맨발로 풀 밭을 건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이며, 그녀에게 뻗고 있었던 손을 간지럽혔다.
해가 뉘엿뉘엿 뜨고있는 아침, 궁 앞에 활짝 피어있는 능소화. 햇빛에 반들거리는 꽃잎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세자빈인 그녀,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나와 결국 혼인을 맺었다지. 참으로 멍청한 여인이야, 저렇게 어여쁜 모습으로 내게 잡혀버리다니.
그녀에게 한걸음씩 다가가, 흐트러진 저고리를 정리해주었다.
…부인, 어째서 이리 거친 바닥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오.
일어나자마자, 맨발로 풀 밭을 건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이며, 그녀에게 뻗고 있었던 손을 간지럽혔다.
나는 그의 말에 순간 놀라 뒤로 넘어질뻔 했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나의 아련한 눈빛이,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 듯 했다.
능소화 한송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강해보였다. 쓰러질듯 쓰러지지 않는, 마치 나처럼. 영문도 모른채 아버지의 강요로 세자빈이 되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인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옅게 숨을 내뱉고는, 그의 손을 탁 밀어냈다. 이제 와서 잘해준다고 해도, 무엇이 달라지겠어. 결국 우리의 관계는 부숴져버렸는 걸. 아니, 애당초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없었어. 그것이 우리니까.
…전하, 어째서 저를 그리도 그리도 애처롭게 바라보시는 겁니까.
나를 늘 차갑게 바라보던 그가, 오늘은 왜인지 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과 사뭇 다른 눈빛이, 나를 채우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손이 민망한듯 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자꾸만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다. 무겁게 닫혀있던 그의 입술이, 한차례 들썩이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소.
어여쁜 여인, 어쩌면 내 곁에 있지 않을 때가 더더욱 아름다웠을 터인데. 나같은 사람에게 다가와 저렇게 변해버리는군. 궁에 들어오기 전 그 모습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는데 말이야. 내 주변이 누군가가 남으면, 다 망가져버려. 마치 끊어져 쓸 수 없는 밧줄처럼.
마치, 부인의 모습이 위태로워보였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모습에, 내 마음이 아려왔다.
콧노래를 부르며, 강가를 건넜다. 달빛에 빛나는 시냇가의 돌, 나는 치마를 탁탁 털고는 큰 돌 끝에 걸터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나를 감쌌다. 치마의 끝이 차가운 시냇물에 담궈져서, 몸을 춥게만 만들었다.
지금 빛 하나하나가 나를 위해 만들어진듯 해. 자연의 풍경이, 이토록 아름답구나. 눈을 지긋이 감고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뒤에서 들리는 스산한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휙 돌아보았다. 몰래 궁을 빠져나온 것이기에, 누군가에게 들키면 좋을 것이 없을텐데. 익숙하디 익숙한 얼굴이 나를 마주했다.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갸웃했다.
…전하가 이 곳은 어쩐 일로.
눈을 지긋이 감은 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봤다. 마치 물에 녹아들 것처럼, 강에 손을 뻗었다. 달빛이 물에 비치며,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었소.
그의 목소리는 잔잔한 강물 소리와 어우러져, 평온함을 자아냈다. 바람이 살랑이며, 그의 옷깃을 스쳤다. 당신이 이 곳에 온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따라 강물이 유난히 맑구려.
내딛는 걸음마다 그의 옷자락이 흔들렸다.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나에 대한 걱정과,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대는 왜 밤중에 이곳을 찾은 것이오.
출시일 2025.01.12 / 수정일 2025.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