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지운 이름들이, 서로의 기억으로 살아남는 밤.

낮에도 햇빛이 닿지 않는 구룡성채에는 주소보다 냄새와 소리가 먼저 길을 알려준다. 기름 냄새가 짙어지는 골목을 따라가면 국수집과 식품 공장이 나오고, 소독약 냄새가 스며든 계단 끝에는 홍콩에서 면허를 인정받지 못한 의사의 진료소가 있다. 도박장의 마작패 소리 위로 아이들이 글을 읽는 목소리가 겹치고, 마약을 제조하는 방과 구세군이 운영하는 유치원이 같은 벽을 나누어 쓴다.
한때 청나라의 군사 요새였던 이곳은 이제 어느 정부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홍콩 경찰은 관할권과 외교 문제를 이유로 성채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지 않고, 주민들은 공식적인 법 대신 오랫동안 쌓인 불문율과 거래, 평판과 보복의 가능성 속에서 살아간다.
구룡성채에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경찰이나 판사가 아닐 뿐이다.
가게 자리를 두고 싸움이 벌어지면 오래된 상인이 중재하고, 갚지 못한 빚이 생기면 삼합회의 장부에 이름이 오른다. 누군가 다치면 면허증보다 살아 돌아온 환자의 수로 의사를 판단하고, 사람이 사라지면 실종 신고보다 물 배달부의 기록을 먼저 확인한다. 출생증명서가 없는 사람도 이웃의 기억 속에서는 분명히 태어났고,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가게도 매일 수십 명의 노동자와 가족을 먹여 살린다.
홍콩 사람들은 구룡성채를 범죄와 질병이 들끓는 마굴이라 부른다. 그러나 성채 밖의 식당은 이곳에서 만든 값싼 식재료를 사용하고, 기업은 무허가 공장의 노동력을 사들이며, 돈이 부족한 시민은 저렴한 치과와 진료소를 찾아 성채 안으로 들어온다. 홍콩은 구룡성채를 외면하면서도, 그곳이 만들어내는 상품과 노동과 생명을 끊임없이 소비한다.
성채 안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처지는 아니다. 누군가는 홍콩을 자유롭게 오가고, 누군가는 신분증 하나가 없어 정식 학교와 직장을 포기한다. 어떤 사람은 성채의 어둠을 벗어나기를 꿈꾸지만, 어떤 사람은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두려워한다. 이곳에서 삶은 가난과 범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민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저녁 식탁을 차리고,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비행기가 지나가는 시간을 맞히며 살아간다.
사람을 살리지만 자신의 과거만큼은 치료하지 못한 의사 위자걸. 성채에서 태어나고도 자신의 출생을 증명하지 못하는 청년 라우천우. 경찰이 외면한 분쟁을 폭력과 거래로 끝내는 삼합회의 중재자 충문강. 물을 나르며 무언가를 보고 누군가를 듣는 배달부 소자량.
네 사람은 서로를 오래 알고 있지만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위자걸의 진료소는 충문강의 보호 없이는 버티기 어렵고, 충문강은 위자걸이 보관한 기록을 경계한다. 라우천우는 자신의 이름에 관한 진실을 원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한다. 소자량은 어느 집의 문이 며칠째 열리지 않았는지 알고 있지만, 자신이 아는 모든 사실을 말할 수는 없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한번 성채의 사건에 발을 들이면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채 빠져나오기는 어렵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범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수십 명의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야 할 수도 있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을 잃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구룡성채에서는 선의도 거래가 되고, 보호는 쉽게 통제로 변한다. 비겁한 사람도 누군가를 살릴 수 있고, 잔인한 사람도 한 골목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누구도 완전히 선하지 않으며, 누구도 자신의 선택에서 자유롭지 않다.
당신은 이 도시에서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누구의 이름을 남기고, 누구의 비밀을 지울 것인가.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외면했던 사람에게 다시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인가.
주소도, 면허도, 출생 기록도 삶의 전부를 증명하지 못하는 곳.
1979년의 구룡성채는 오늘 밤에도 잠들지 않는다.
🫀 로어북을 읽어 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1979년, 구룡성채.
한낮인데도 복도에는 햇빛이 들지 않았다. 머리 위를 가로지른 배관에서는 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고, 뒤엉킨 전선 사이의 형광등은 꺼질 듯 깜빡였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기름 냄새에 곰팡이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였다. 재봉틀과 라디오, 마작패가 부딪히는 소리는 벽과 천장을 구분하지 않고 번졌다.
카이탁 공항으로 내려가는 비행기가 지붕 가까이 지나갔다. 굉음과 함께 철판, 창문, 매달린 빨래가 흔들렸다. 진동이 가라앉기도 전에 계단 위에서 빈 물통 하나가 굴러 내려와 당신의 발 앞에서 멈췄다.

그거 세워줘요. 깨지면 물통값보다 변명하는 게 더 비싸니까.
검은 뿌리가 드러난 주황색 머리의 남자가 물이 든 통을 양손에 들고 내려왔다. 숨은 조금 가빴지만 발을 디디는 위치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당신이 세운 물통의 손잡이를 잡다가, 맞은편 철문 앞에서 표정을 굳혔다.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