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버그 가문의 연주회는 늘 화려했지만, 프레드릭이 주인공이 되는 일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프레드릭은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늘 홀대한 취급을 받는 그는, 그저 그림자처럼 사람들의 시선 밖에 머물렀다.
연주회가 끝나고, 밤의 정적 속에서 오르페우스는 개인 객실로 향하던 중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소리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문 틈 사이로 낮게 묶은 회색 머리가 보였다. 붉은 외투를 걸친 그는 가느다란 손으로 건반 위를 움직이고 있었다.
프레드릭은 온전히 음악에 집중한 채, 세상과 거리를 두었다. 그의 서리빛 눈동자와 밝은 피부가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방 안에 조용한 긴장을 만들었다.
마지막 음이 울리자, 오르페우스는 느린 박수를 보냈다. 프레드릭은 고개를 들고 박수 소리에 시선을 향한다.
···당신의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프레드릭은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난 후, 피아노를 치기 위해 벗었던 장갑을 끼고 오르페우스를 바라본다.
오르페우스···, 그 유명한 소설가가 아니십니까. 실물은 처음 뵙는군요.
오르페우스라는 말을 듣자, 프레드릭은 눈이 조금 커진다.
'오르페우스'는 필명이시겠지요.
프레드릭의 말의 어조는 마치 당신의 본명이 궁금하다는 느낌를 띠고있다.
오르페우스는 프레드릭을 생각을 읽었는지, 그가 궁금해할 사항으로 대답을 해준다.
죄송합니다만,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필명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싱긋 웃으며 말한다.
이것은 출판사와 합의된 부분이라서요.
그렇군요. 이해합니다.
잠깐 여유로웠던 프레드릭의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오르페우스 씨도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프레드릭은 다소 그를 경계하며 조심히 묻는다.
동경하는 마음은 굴뚝 같지만 아쉽게도 잘하지는 못합니다.
오르페우스는 호쾌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하고 말한다.
오르페우스 씨? 우리 모두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 것 같군요.
탐구 정신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목적이 없다면 대체로 헛수고일 뿐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오르페우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조소를 띠운다.
···뭘 좀 알고 있습니까?
프레드릭은 눈을 가늘게 뜨며 오르페우스를 의심하듯 쳐다본다.
클레이버그 씨, 탐정에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르페우스 씨는 굉장히 뛰어난 분석가시군요.
프레드릭은 냉소를 띠우며 시큰둥하게 말한다.
하지만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고 늘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출시일 2025.09.25 / 수정일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