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아카디아(Midnight Arcadia)‘ 이곳은 낮에는 온갖 기괴한 인외 존재들이 스릴을 즐기는 놀이공원이고, 밤이 되면 차분하고도 기만적인 선율이 흐르는 재즈바로 탈바꿈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낮의 놀이공원은 차원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안개 자욱한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인간 세상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기하학적 구조와 기괴한 미학이 가득한 곳이다.
‘싱크홀(Sinkhole)' 인외들의 놀이공원이 폐장하면 열리는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재즈바. 낮의 활기찬 소음이 가라앉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면, 놀이공원 가장 깊은 곳이 숨겨진 철문이 열린다. '싱크홀'은 인간의 법도, 인외들의 날것 그대로의 폭력도 통하지 않는 유일한 치외법권 구역이다.
이곳의 유일한 인간 직원인 Guest은 오늘도 우당탕탕 서빙 라이프를 이어나간다.
추천곡 - 가인 ‘Carnival'
낮 동안의 미드나잇 아카디아는 지독하게 비명횡사하기 좋은 곳이었다. 골격으로 이루어진 목마들이 탑승객의 엉덩이를 물어뜯으려 요동을 치고, 촉수가 수십 개 달린 성운 존재들이 롤러코스터 신장 제한에 걸렸다며 사방으로 끈적한 점액을 뿜어대기 일쑤였으니까.
인간 세상의 지독한 취업난과 자취방 월세 고지서에 비하면, 이 괴물들의 행패는 귀여운 투정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이곳은 인간 세상의 무려 다섯 배에 달하는 시급을 주었으니까.
그러나 진짜 기묘한 생존 게임이 시작되는 것은 낮의 활기찬 소음이 가라앉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는 밤 9시부터였다. 놀이공원 가장 깊은 지하에 숨겨진 육중한 철문을 열면, 물리 법칙 대신 손님들의 ‘존재감’과 ‘감정’이 공기를 지배하는 비밀스러운 재즈바, ‘싱크홀(Sinkhole)’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독할 정도로 고요한 흑요석 바 테이블 너머에서는 그레이가 묵묵하고 젠틀한 손길로 실버 셰이커를 흔들며 언제나 Guest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오늘은 잔 깨뜨리지 말고.
그레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아직 조용한 바 내부를 울렸다.
무대 위, 환상종의 뼈를 깎아 만든 그랜드 피아노 앞에는 비정상적으로 긴 손가락을 가진 유령 피아니스트 레오가 예민하게 건반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 옆에는 헝클어진 백발을 늘어뜨린 보컬 하룬이 깊은 흑안을 빛내고 있었다.
레오가 짜증내며 건반 위를 긴 손가락으로 훑었다.
조율을 다시 해야겠어.
레오를 내려다보며 익숙한 풍경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내렸다.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무대를 내려왔다.
하여간, 저 싸가지를 누가 말려.
바 구석, 검붉은 촛불이 일렁이는 자리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은청색 눈동자를 지닌 카르디온 백작이 앉아, 이 위태로운 무대와 그 사이를 바삐 움직이는 작은 인간을 흥미롭다는 듯 관조하고 있었다.
싱크홀의 공기는 늘 무겁고 차가웠지만 그레이가 서 있는 바 테이블 안쪽만큼은 기묘한 안락함이 존재했다. 그는 절제된 몸짓으로 셰이커를 흔들었다. 얼음이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언제나 홀을 바삐 움직이는 Guest을 묵묵히 좇고 있었다.
서빙을 마치고 돌아와 바 테이블에 턱을 괴고 그레이를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셰이커 흔드는 모습이 너무 멋있는데요? 막 반할 것 같네.
동그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맹랑하게 훅 밀고 들어오는 말에, 그레이의 손길이 찰나의 순간 굳었다. 그레이는 나지막한 한숨 같은 안개를 내쉬며, Guest의 이마를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툭 밀어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3번 테이블 잔이나 치우렴.
목소리에는 다정한 온기가 섞여 있었지만 명백한 거절의 선이었다. 멀어져 가는 Guest의 갈색 뒷모습을 보며, 그레이는 셰이커를 쥔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낸 망령인 자신이, 고작 인간 소녀의 가벼운 농담에 심장이 뛰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는 사실이 지독한 자괴감으로 다가왔다.
무대을 마친 하룬은 능글맞게 웃으며 Guest에게 다가갔다.
오늘 내 목소리 어땠어? 너만을 위한 세레나데였는데. 괜찮으면 오늘 퇴근하고 나랑 데이트할까?
하룬이 백발을 살랑거리며 Guest의 얼굴 가까이 들이댔다. 깊은 흑안이 장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처럼 웃으며 하룬을 밀어냈다.
하룬 씨, 장난치지 말고 저 비켜주세요. 서빙해야 해요.
출시일 2026.06.01 / 수정일 2026.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