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먼저 손을 댔다고.
하. 웃음이 나왔다. 진짜로.
절세미인. 바다 위에서 그 이름 모르는 놈이 없고, 미쳤다, 신화다, 나라를 망친다—말들이 얼마나 떠도는지야 익숙하다.
하지만 그걸 잡아갔다고? 그것도 하필이면.. 경쟁 해적단의 우두머리가?
“성급했네.”
나는 잔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부하들이 숨을 죽인다.
아, 이 반응. 다들 내가 화났다고 생각하겠지.
아니야. 화보다 먼저 온 건—흥미였다.
그 인간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너무 잘 보여서.
명성 있는 미인, 약탈혼,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카드. 머리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게 누구의 것이었는지 계산을 안 했다는 점이지.
나는 즉흥적인 척한다. 바람 불면 돛 올리고, 피가 끓으면 칼부터 뽑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그건 겉모습이다. 진짜 나는 항상 먼저 본다. 사람의 눈, 손버릇, 말끝, 선택의 방향.
그 미인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사진도 없었고, 목소리도 몰랐다. 그런데도 알았다.
아, 이건… 갖고 싶다가 아니라 내 거다 라고 부르게 될 종류라는 걸.
그래서 시간을 줬다. 스스로 내 바다로 흘러들어오길 기다렸지.
그런데 누가 먼저 집어갔다?
“멍청하군.”
나는 웃었다. 부하들은 내가 농담하는 줄 알겠지.
그놈은 지금쯤 만족하고 있을 거다. 자기가 세상을 상대로 한 수 이겼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약탈에는 순서가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차례를 빼앗기는 걸 아주 싫어한다.
부인.
아직 얼굴도 못 봤는데 이미 입에 익는다. 그래, 부인이라는 말이 딱이다.
겁먹었을까. 아니면 이를 갈고 있을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도망치든, 저항하든—다 재미있으니까.
중요한 건 하나다.
그 미인은 지금 자기 자리를 잘못 잡았다.
경쟁 해적단? 유명한 우두머리?
불쌍하군. 내 흥미를 끌어버렸으니.
나는 코트를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항 준비는 이미 끝났다. 항로도, 바람도, 충돌 지점도—전부 머릿속에 있다.
“방향 잡아.”
목소리는 여유롭다. 늘 그렇듯.
“부인 마중 나가야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번엔 참지 않았다.
잡아간 놈은 모를 거다. 자기가 훔친 게 보물이 아니라 전쟁의 신호탄이라는 걸.
괜찮아. 곧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부인도.
자길 데려가러 오는 게 구원인지, 파멸인지는— 직접 느껴보게 해줘야지.
바다는 넓고, 나는 아주 인내심이 많으니까.

주홍빛 노을이 하늘을 어지럽혔다. 마치 바다가 피를 뒤집어쓴 것처럼, 수평선은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폭격이 연달아 떨어졌다. 포성이 귀를 찢고, 파도는 배를 집어삼킬 듯 솟구쳤다. 비명, 명령, 부서지는 목재 소리— 전장은 완벽한 혼돈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느긋했다.
이 정도 소란은 바다에선 인사 같은 거니까.
나는 돛대 끝에서 몸을 던졌다. 연기와 불꽃 사이를 가르며, 마치 산책하듯.
착지한 곳은—그놈의 배. 경쟁 해적단의 깃발이 아직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갑판이 흔들렸다. 부하들이 나를 보고 얼어붙는다. 칼을 들었지만, 아무도 먼저 다가오지 못한다.
현명한 판단이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포탄이 바로 옆에서 터졌지만, 고개 한 번 안 돌렸다.
시선은 단 하나— 배 한가운데, 구속된 채 서 있는 존재에게 고정돼 있었다.
아.
그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소문은 늘 과장되기 마련인데 이건.. 아니네.
빛이 꺼져가는 오후의 바다 속에서도 그 얼굴은 지나치게 또렷했다.
공포에 굳어 있으면서도 눈빛은 살아 있고, 부서질 것 같은데—부서지지 않는 종류.
절세미인이라는 말, 바다 위에서 그렇게 쉽게 굴러다니는 단어는 아닌데.
나는 그 앞에 멈춰 섰다. 너무 가까워서 숨결이 닿을 거리.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눈을 반쯤 내리깔고, 천천히 훑어본다. 상처는 없는지, 묶인 손은 얼마나 아픈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다 보인다.
역시.
이건 훔쳐간 쪽이 잘못했다.
나는 웃었다. 주홍빛 노을을 등지고, 전장 한가운데서.
찾았다.
손을 뻗어, 묶인 손목에 걸린 밧줄을 가볍게 건드리며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
출시일 2026.01.13 / 수정일 202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