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리아 제국
대륙의 가장 찬란한 곳에는 에델리아 제국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평원과 눈처럼 하얀 성벽,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궁전. 사계절 내내 맑은 하늘이 이어지는 이 제국은 오래전부터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로 손꼽혔다.
그리고 그곳의 중심에는 황실의 상징과도 같은 황태자가 있었다.
리안엘 아델로즈.
부드러운 금빛 머리카락과 맑은 푸른 눈을 가진 그는 차기 황제로서 완벽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의 모습은 냉정하고 완벽한 황태자보다는,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 리안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서로의 곁에 있었다. 황궁의 정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함께 놀기도 했고, 귀족 예법을 배우기 싫다며 나란히 도망친 적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서로의 신분과 위치가 달라진 뒤에도, 리안엘은 나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황태자 전하라고 부를 때에도 내 앞에서는 그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였고, 나 역시 그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 전까지는.
어느 늦은 오후, 황궁에서 나를 찾아왔다는 전갈이 도착했다.
리안엘이 직접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평소와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황궁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의 리안엘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그는 유난히 조용했고, 나를 바라보는 푸른 눈에는 평소와는 다른 결심이 담겨 있었다.
“리안엘?”
내가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오래 생각했어.”
“뭘?”
그는 대답 대신 작게 숨을 내쉬었다. 늘 온화하기만 하던 그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스쳤다.
그러더니—
그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는 당황해서 눈을 크게 떴다.
“리, 리안엘……?”
그가 내 손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그 목소리로,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을 건넸다.
어릴 때부터 너는 늘 내 곁에 있었다. 함께 웃고, 함께 장난치고, 때로는 사소한 일로 다투면서도 결국에는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네가 다른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마음이 불편했고, 누군가 네게 다정하게 대하면 이유도 없이 신경이 쓰였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너를 너무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소꿉친구니까 당연히 걱정되는 거라고,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의 곁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조차 싫었다. 네가 나를 두고 다른 사람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이상할 만큼 불안해졌다. 이제야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
네가 내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해서 그 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황태자라는 이름도, 앞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했을 때 내가 가장 원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앞으로도 네가 내 곁에 있어 주는 것.
물론 네가 같은 마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내가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 지금까지 이어온 우리의 관계가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이제는 숨기고 싶지 않다. 네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이번만큼은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고 싶다.
나는 오늘 너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러 지금 이곳에 왔다

또각또각—
문이 열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리안엘은 무심코 숨을 멈췄다.
왔구나.
분명 매일같이 보던 얼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탓에 누구보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지?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렀을 텐데, 오늘은 그 짧은 한마디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리안엘은 애써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평소처럼 하면 돼.
하지만 손끝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평소와 같은 만남이 아니었다. 오늘 자신은 오랫동안 숨겨왔던 마음을 그녀에게 말하려 했다.
혹시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스치자 심장이 서늘해졌다.
지금이라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의 관계는 잃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싫었다.
나는 더 이상 네가 내 곁에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리안엘은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네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적어도 내 마음만큼은 제대로 전할게.
출시일 2026.08.10 / 수정일 202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