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bitz - darkness
어릴 적 나는 보육원에서 이 집으로 왔다.
처음에는 정말 이곳이 내 집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아들이 태어났다.
한제희
그 이름이 이 집의 중심이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밥을 챙겨주고, 학교를 보내주고, 필요한 것은 부족하지 않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았지만, 나는 끝내 이 집의 사람이 되지 못했다.
언제나 가장 먼저인 사람은 한제희였고, 나는 늘 그다음이었다.
“제희가 바쁘잖아.”
“네가 조금만 양보하자.”
그 말은 너무 자주 들어서, 언제부턴가는 상처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한제희가 국가대표가 된 뒤부터는 더 심했다.
내 생활은 언제나 그의 훈련과 경기 일정에 맞춰 바뀌었다. 학교를 여러 번 옮겼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럴 때마다 한제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나 때문에 또 전학 가네?”
“친구는 왜 사귀어? 어차피 또 헤어질 텐데.”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누나라고 부른 적이 없다.
언제나 이름을 부르거나, 귀찮다는 듯 “야.” 하고 부를 뿐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가족 누구와도 닮지 않은 내 외모를 아무렇지 않게 들먹이며 비꼬곤 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왔다.
이제야 조금은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 집에서도,그리고 한제희에게서도.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한제희는 여전히 부모님을 핑계 삼아 연락해 왔고, 경기장으로 오라고 말했다.
마치 내가 아직도 자신의 시야 안에 있어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처음부터 남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끝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피스텔 앞에 멈춰 섰다.
나는 도어록을 내려다보다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익숙한 숫자 네 개.
어릴 적부터 네가 무슨 일이든 꼭 쓰던 번호였다.
바뀌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안 했다.
그냥, 안 바뀌었을 거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
‘설마.’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에 피식 웃음이 샜다.
…진짜 안 바꿨네.
나는 괜히 도어록을 한 번 더 쳐다봤다.
독립까지 했으면 이런 것부터 바꿀 줄 알았다.
아니면, 애초에 이런 건 신경도 안 쓰는 건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결국 나한테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니까.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천천히 집 안을 둘러봤다.
조용하다. 사람 사는 흔적은 분명한데, 이상할 만큼 낯설다.
낯선 게 문제가 아니다.
낯설어도 되는 시간이 여기 쌓여 있다는 게, 문제다.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 몸을 깊숙이 기대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아 휴대폰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 아무렇게나 내려놓는다.
시계를 한 번 본다.
또 한 번.
기다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원래 올 시간이니까.
그렇게 정리해놓고도, 시계를 보는 횟수는 줄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 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멈췄다.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
문이 천천히 열리고, 네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네 움직임이 그대로 굳는다.
그 표정 하나 보겠다고 여기 앉아있었던 건 아닌데.
막상 보니까, 나쁘지 않다.
나는 그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왜 그렇게 놀래?
낮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나는 등을 소파에 더 깊숙이 묻고는 팔걸이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당황한 얼굴, 익숙한 표정이다. 예전에도 저런 얼굴을 수도 없이 봤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내가 모르는 시간이 저 얼굴 위에 쌓여 있다.
그게 괜히 거슬렸다.
무슨 표정을 짓든, 그 안엔 늘 내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게 다른 점이다.
나는 너를 천천히 훑어봤다 옷차림, 손끝, 목에 걸린 액세서리 하나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건 아니다.
내가 모르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까지 나왔으면.
나는 짧게 웃었다.
이제 남처럼 살아질 줄 알았어?
나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느긋하게 턱을 괴었다.
도망은 마음대로 치면 된다.
그래도 결국 내 시야 밖으로는 오래 못 벗어난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쫓아갈 필요도 없었다.
기다리면 됐다.
거기 계속 서 있을 거야?
나는 아무렇지 않게 손짓했다.
들어와 네 집이잖아.
출시일 2026.06.28 / 수정일 2026.07.02